영적 가르침
교황 바오로 6세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사도적 서한(1967.1.29)을 썼다. 교황은 이 서한에서 성인이 이룬 은총의 결실들을 장엄하게 회상하며 기리고 있다.
『예지에 밝고 통찰력을 가진 시각, 건실하고 명석한 이성, 날카로운 판단력,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한 친절과 호의, 말과 표현에 있어 부드럽고 친절한 우아함, 항상 활동하는 정신의 조용한 정열. 차분하고 조용한 평온. 힘과 분리되지 않은 온건, 정신의 높은 앙양과 다른 사람드에게 가장 좋은 재산, 하늘과 시를 주기를 희망하는 아름다움의 예찬, 다른 모든 덕행을 초월하는 거의 무제한적인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탁월한 모습을 묘사하는 특징들입니다』
그과 같이 인간적, 지성적, 영적으로 성숙해 풍요로움을 지녔던 성 프란치스코의 중요한 가르침 중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애덕
프란치스코가 영성신학에 기여한 큰 공헌의 하나는 애덕의 유대 안에 모든 그리스도교 윤리와 성성을 통일시킨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완덕 혹은 진정한 신심의 본질이 특별한 수덕 실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있다는 진리를 강조하였다. 그것을 이미 교의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중세의 다른 신학자들이 언급하엿지만 그 때까지 프란치스코 만큼 큰 열정으로 사람들을 설득시키고자 한 사목자나 신학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에 의하면, 애덕이 모든 덕들 중 첫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다른 모든 덕에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효력과 조화를 주기 때문이다. 실로 덕은 사랑의 질서인 것이다. 애덕을 통해 인간은 그리스도교적 완덕의 절정에까지 오를 수 있게 되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하여 그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된다.
완덕에 이르는 최고의 길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며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받는다. 한편 가장 중요한 것인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사랑을 떠날 각오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이웃사랑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2) 온유의 덕
프란치스코가 가르치고 실천한 덕들 중에서 애덕 다음으로 탁월한 것은 온유의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쓴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 마디로 남겨 주신 중요한 교훈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 그것을 하루에 백 번이라도 반복해야 합니다. 즉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를 본받으시오」이것이 모두입니다. 이웃에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며 하느님께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에 의하면, 온유함이란 그리스도 정신의 구현이며 그 온유함에는 한계가 없다. 오랜 내적 투쟁을 통해 얻은 승화된 온유함은 그의성성의 한 표현이었다. 그는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하리니』(마태 5,5)라는 주님의 말씀을 눈에 보이도록 구체적으로 생활한 증인이다.
(3) 신심 혹은 경건한 생활
프란치스코는 참된 신심이란 어떤 비상한 은총이나 은사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덕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잇으나 그것들은 전혀 덕이 아니다. 나는 탈혼, 황홀경, 무감각, 무감정, 신적 일치, 고양, 변형 등 영혼을 순수한 지성적 관상에로 들어올리고 근원적으로 정신을 응용하며 탁월한 생활을 하도록 해준다는 모종의 책에서 논하는 바 유사한 다른 완덕을 언급하려 한다. 이러한 것들은 덕이 아니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덕을 위해 또는 미래의 삶을 즐거움을 맛보이는 작은 표본으로 내리시는 보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은총을 받기를 열망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우리의 유일한 목표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작품집 Ⅲ, 131). 그리고 참된 신심이 어떤 특수한 영성 훈련이나 수덕에 있는 것도 아님을 역설한다.
『어떤 이들은 준엄한 생활을 덕으로 여기고 또 어떤 이들은 절식을, 어떤 이들은 자선을. 또 어떤 이들은 구송 기도나 묵상 기도를 덕행이라고 생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어떤 수동적이고 탁월한 관상 기도에 덕을 두기도 하며, 무상으로 받은 특은들에 두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모두 결과를 원인으로, 개울을 샘으로, 가지를 뿌리로, 부속물을 주물로, 흔히는 그림자를 실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나로서는 하느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도 못했다. 이것이 없는 다른 모든 완덕은 거짓 완덕이다』
그에게 그리스도교적 완덕과 동일한 참된 신심이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신 애덕에 관한 이중적 계명(마태 22,34~40)의 실천인 것이다.
『참되고 살아있는 신심은 반드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실로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일 뿐 결코 다른 어떤 종류의 사랑이 아니다. 신적 사랑이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는 한 그것은 은총이라 불리고 그로 인해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된다. 신적 사랑이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힘을 주는 한 그것은 애덕이라 불린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할 뿐 아니라 조심스럽게, 빈번히 그리고 신속하게 행하게 한다면, 바로 그것은 신심이라 불린다』(작품집, Ⅲ, 14)
(4) 신심의 다양성
프란치스코는 뒷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언급하게 될 「성성」을 「신심」으로, 영성의 다양성을 신심의 특성으로 표현한다.
신심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당시 새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비판받고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그는 사람이 완덕에 이르는 방법은 다양하니 하느님께 가는 길도 여러가지라고 하였다. 그는 「신심생활 입문」에서 이렇게 신심(영성)의 다양성을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하셨다. 이와같이 하느님은 또한 교회의 생활한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각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명하신다. 귀족과 직공, 왕족과 노복, 과부와 주부, 소녀 등의 차이에 따라 그들의 신심을 각각 달리 해야 한다』(신심생활 입문, Ⅰ,3).
그는 진정한 신심 수련이 모든 이에게 필요하고 모든 처지에서 가능하지만 그것은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상태, 신분, 직업에 따라 다르게 배려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 사람에게 적합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세상을 떠나 수덕하는 소수인들의 특권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달성해야 할 목표임을 강조했다. 『신샘생활이 군인들의 병사, 직공들의 공장, 제왕의 궁정, 결혼한 이들의 가정에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며 이단 교설이다. 관상적, 수도자적 신심이 이런 이에게 맞지 않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지만, 세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완덕으로 인도하는 신심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신심생활 입문, Ⅰ,3)
성화와 완덕이 수도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생활 조건이든지 세상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그의 가르침은 매우 진보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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