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힘들었던 순례의 길 80000km- 제 42차 만국성체대회 한국 대표란의 순례의 대행진이 프랑스-스페인-영국 그리고 이스라엘 전역을 이으며 장장 2만리에 걸쳐 펼쳐졌다. 갈등과 회오와 사랑으로 점철된 25일간의 순례 2만리길을 애독자들고 더불어 다시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7월 10일 한국순레단 일행은 「빠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오후 3시 빠리 외방전교회로 향했다.
9월 오후 5시 김포공항을 떠난 후 22시간 30분, 총 비행시간만 15시간 40분이란 긴 여행끝에 첫 목적지 「빠리」에 도착한 모두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장거리 비행기여행, 그리고 낮과 밤이 바뀐 8시간의 시간차, 거기다 비행기 안에서만 하루를 보낸 피로감으로 순례단은 낯선 이국 풍경에도 거의 무감각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모두가 침대에 드러 눕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피곤하다 해도 어찌 편안히 쉬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열글게 해준 신앙의 은인 빠리의 방전교회를 지척에 두고서 말이다. 호텔에 짐을 내리기가 무섭게 3대의 관광버스에 분승 「빠리」시내 「박」街 128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외방전교회를 찾아 나선 것이다.
좁은 정문을 들어서니 고색 짙은 거대한 외전건물이 방문객을 압도하며 버티고서 있다. 파란 잔디와 대조를 이루는 빛 바랜 붉은색 벽돌건물은 3백년이 넘는 이전교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한눈에 설명해 주고있다.
잘 정돈되어 마치 어느 아파트건물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신학교 건물의 참들은 한여름인데도 굳게 닫혀져있다.
3백여년 동안 이시아지역 파견 선교사들의 요람인 빠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는 지망자가 없어 문을 닫은지 이미 수년-지금은 단지 지난날의 영광만을 간직한채 7월의 태양 아래 조용히 졸고 있다.
아시아 지역 선교를 위한 서교사 파견을 목적으로 1658년 프라스와 빨루, 삐에르 람베르동 두 프랑스 신부가 창립한 빠리 외방전교회는 3백년 동안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아시아 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 이지역 복음화에 새 전기를 이룩했다.
베트남과 태국을 첫 임지로 택한 이들 선교사들은 1666년 현지에 신학교를 개교했고 이 신학교는 그후 우리의 귀에 익은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옮겨졌는데 빠리본부의 신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는 아직도 아시아 지역방 인사체 양성의 중추적 기능을 맡고 있다.
17ㆍ18세기에 들어 빠리의 방전교회는 남서중국과 남부 인도에까지 그 선교지역을 확장했고 19세기에 들어 일본ㆍ만주ㆍ비마ㆍ라오스ㆍ캄보디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했다. 바로 이시기에 한국도 빠리의 방전교회와 첫인연을 맺어 오늘의 한국 교회기초를 다져 나갔던 것이다.
빠리 외방전교회는 아시아 지역 선교에서 150명의 선교사를 박해의 칼날 아래 잃는 등 모진수난을 겪어야만했다.
토속 신앙에 젖어있던 각국 국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는 이처럼 값비싼 댓가를 치춰야했던 것이다.
지금도 이전교회 기념관에 홀렸던 선교사들의 유품과 각종 기록들이 국적별로 전시되고 있었다.
숙연한 자세로 유품들을 훑어나가던 순례단들은 한국 전시관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복자 김대건 신부의 빛바랜 친필 서한이 우리를 맞고 있었던 것이다. 라띤어로 정성들여 쓴 김신부의 친필을 이역만리 프랑스에서 접할줄이야…
순레 첫날 우리를 맞아준 김신부의 서한은 긴 순례길에 나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어 하나의 순레지표를 던져주었던 것이다.
순례단은 이 전교회 성당에서 한국을 떠난후 이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한국땅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선교사들도 바로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떠났을것을 생각하니 북받치는 감동으로 온몸이 뜨거워진.
비록 2층 성가대자리 마루는 낡아 발자국을 옮길적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이조그만 성당이 더없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피로써 맺어진 형제애 때문인가.
미사후 재불 한국인교회 사도회(회장=이상익ㆍ라우렌시오)주최 환영연이 있었다.
이미 60년대 부터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 이들 한국인들은 현재는 60제대로 자리를 잡은 신자는 15명 남짓하여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고 사도회원 김창배(야고보)씨가 귀띔해 준다.
작년부터 이병호 지도 신부(전주교구)를 중심으로 학생회 부인회 등을 조직, 사도직 활동에 임하고 있는 이들이 고국의 순례단을 맞기위해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성들여 잔치를 마련했던 것이다.
한피줄 한 믿음으로 맺어진 사랑에 감사하며 다같이 축배를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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