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군인주일을 맞아 전후방에서 군복무에 여념이 없는 신자군인들의 생활상을 부모님께 보낸 어느 군종신부의 편지로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註)
어머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이번 추석명절은 무척이나 쓸쓸하셨죠? 누님도 못내려 가셨다고요. 둘째가 수도원으로 떠났다는데 이제 또 식구가 하나 줄고 집이 텅빈 것 같아 허전하겠군요. 자주 소식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이곳에서 대구까지는 무려 7시간이지만 마음으로는 금방인걸요. 10월에는 꼭 시간을 내어 찾아 뵙도록 하겠어요. 아마도 군인이며 신부라는 두가지 신분 때문에 이런 제약을 받는 것 같읍니다.
작년 군인 주일날 아버님이 돌아가셨을때도 맏상주인 제가 제일 늦었고 그래서 임종도 도와드리지 못했지 않습니까? 이번 기일에도 군인주일 행사관계로 분주할 것 같아 내려가지 못하니 이런 불효를 어쩌죠? 두가지 신분증 어느것 하나도 부족됨이 없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지난주일 전방의 우리 병사들과 철책 가까운 야외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멀리 멀어져 있는 부모님을 위해 함께 기도 했읍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올때 쯤 햇살은 고운 저녁 놀빛이 되어 짙은 가을의 풍요를 쏟아부어 놓은 것 같았어요. 까맣게 그을린 우리 병사들의 얼굴과 황금물결、높은 하늘、대자연이 바로 성전이고 성소였읍니다. 비포장 같이 안개 먼지로 익숙하고 보면 오히려 포근한 감마저 들어 좋읍니다. 이렇게 해서 지독한 촌놈이 되어가는 걸까요? 아무튼 시간이 부족합니다. 할일이 많읍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신학생도 곧잘 제일을 도와주고 있읍니다. 부엌일부터 미사가방 챙기는 일까지 분줗게 움직입니다. 지난번 어머님이 오셨을 때 지적해 주신 성모상은 새로 도색했읍니다 .수도와 간이 목욕탕도 만들었구요. 자체부담으로는 힘들었지만 30만원짜리 적금만기를 찾아서 했습니다. 그럼 주님의 은총속에 항상 편안하시길 빌겠읍니다.
1981년 9월 24일 신슬리에서 큰아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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