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적인 신앙대회가 오는 10월 18일 여의도 광장에서 전국 각교구 신자들이 참석한가운데 거행된다. 차제에 본보는 양한모씨를 통해 한국교회 신앙의의와 그 필요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註>
祝祭참뜻 살려야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을 기념하는 그자체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기념하는 방법과 형태에 관해서는 의견이 많은것 같다.
확실히 그기념행사는 축제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이미 여러행사를 치르고 믿음의 제전인 10월 18일에 개최될 신앙대회만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무릇 축제는 과거의사건을 기념하고 미래를 예고하며 현재생활의 요구를 나타내는것이리라. 다시 말해서 지난날의 업적에 감사하고 미래에 참여하며 오늘의 생활에 대한 축제가 민족사와의 맥락에서 구세사와 연결돼있을 때 우리는 그행사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대회를 앞둔 우리는 구약의 예언자의 축제에 대한 경고를 냉철하게 되새겨봐야 할 것 같다. 아모스는『축제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겸구나』(아모스 5ㆍ12)하였고 호세아도 『절기를 따라 지키는 갖가지 축제를 페지하여 모든 즐거움을 앗아 가리라』(호세아 2ㆍ13)고 외쳤으며 그리고 이사야역시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아시야 1ㆍ13)라고 소리치고 있기에 말이다.
물론 그들 예언자는 실제로 축제를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충실한자의 거짓축제를 경고하여 축제의 참뜻을 살리도록 호소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언자들의 말에 비추어서 우리는 왜 신앙대회를 개최하고 하필이면 여의도 광장에 모이느냐에 대해서 문제로 제기하여 살펴봐야 하겠다.
왜 신앙대회를 개최하는가?
신약의 하느님 백성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천상조국을 향해서 걸어가는 나그네이다. 그 교회는 세상의 박해의 하느님의 위한 속의 여행을 계속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순례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결코 한곳에 안주할 수는 없다.
여행하는 하느님의 백성이기에 천막을 거둬들고 쉴사이 없이 끊임없는 전진을 하여야 한다.
복당이라는 성당 안에만 머무르며 게토화하고 있다면 사막의 천막에서 초월적인 활동을 실현하였던 하느님의 현존을 상기할 수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구체적인 민족 가운데서 구원계획을 실현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기에는 부족할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본당이 주교가 소집하는 큰공동체의 중간지대의 성체적 모임일진대 주교를 중심으로한 그 공동체를 반영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주위 세계안에 육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본당에서 기념미사를 거행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구태여 대집회인 신앙대회를 본당 밖에서 꼭 개최하여야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사실 교회의 신비는 성사적인 면에서는 지방적인 성체모임 가운데서 가장 완전히 실현된다.
공동제의(祭儀)에서 다시 하나가 되고 분산된 주교와 그의 사제단은 하느님 백성전체와 더불어 소집할 때 참교회의 본질을 나타낸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공동제의를 거놀하여 주교를 중심으로하는 교구공동체의 전례생활을 중히 여기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전체가 같은 전례집전에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례헌장 41)또한 사제단의 일치가 적절히 표현되는 미사의 사제공동집전을 거듭 역설하고있는 것이다.
(전례헌장57)교구라는 교회공동체가 위대한 성체공동체로서 주님의 식탁을 주심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전체 즉 주교 사제 수도자 신도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직방적인 성체적 모임을 갖는다는 것은 확실히 교회의 본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것이다.
특히 주교와 사제단의공동집전으로 하느님의 백성전체가 참여하는 교회공동체의 성체적 모임은 이 땅의 주위세계에의 육화를 완전히 이룩하는 신비인 것이다.
그런데 신앙대회를 개최하는데 있어서 서율 교구민을 중심으로 여러지방의 교구민、즉 한국의 하느님 백성이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당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조선교구가 설정 1백50주년을 김념하기 위하여 주교의 소집으로 개최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신앙대회는 결코 한국천주교가 군중을 모아 수량적 시위를 하는 따위의 집회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신앙대회는 그리스도가 자기제자들을 최초로 성체적 모임에 초대함으로써 그곳에서 바쳐진피는 『많은 사랑을 위한 것』을 (마태오 26ㆍ28)특히 명백히 하며 오늘의 천주교가 이땅에 파견된 사명을 되새기며 선교적인 의미에서 가장 견고한 자반을 이땅에서 지려는것이다.
왜 여의도에서 개최하는가
신앙대회의 창조 선정에 대해서 여러의견이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신앙대회의 장소 선정에는 두가지 원칙이 꼭 지켜져야 한다.
첫째는 동원된 군중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교회사적으로 조금이라도 관련성과 의미가 있느 곳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10월 18일 개최될 신앙대회에 25만명 이상의 신도대중과 25만명 이상의 일반시민이 동원 집결될 것으로 예상할 때 그 대군중이 모일 수 있는 장소도 실제로 서울시 일원에서 여의도 광장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아는 일이다.
조선교구가 설정되기에는 우리선조들이 血寧로 꽃을 피우며 가꾸어온 그 희생과 그 장렬한 믿음이 있었던 고난의 교회사적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 교구설정을 기념하는 시점에 있어서 순교지를 고려에 넣지 않을 수 없다. 실지로 순교성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와의 연관성이 꼭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의도 광장은 이점에 관해서 다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된다. 다름아니라 여의도 근방에는 새남터와 절두산이 위치하고 있어 그 순교지를 가까운 거리에서 마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이 잘려 흘린피가 한강물고 더불어 흘러간 그곳 가까이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성체저 모임을 갖고 전국 주교단과 함께 사제단과 신도단이 전례적 축제신앙의 제전、선교의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신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여의도 광장에 모인 모든 하느님의 백성과 선의의 사람은 새남터와 절두산이 지니고 있는 신앙의 유산을 그 자리에서 반드시 현재화 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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