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어이없는 도난사건의 장본인이 「수희」라니 마주 앉아있는 수희가 영모르는 다른 아이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럴리가?)
무기명의 투서를 읽으면서 다른 감정에 의한 무모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좀더 순수(?)했다.
『이 편지, 수희는 어떻게 생각하지?』
수희는 놀라거나 당황하는 대신 잘알겠다는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럴줄 알았어요』
『……?』
『전 굳이 비밀로 하고싶지 않았거든요』
이젠 손버릇을 고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희는 주일학교에 같이 나가는 두 친구에게 자신의 과오(?)를 진지하게 고백했다는 것이다.
『왜 나한테 직접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수희는 고개를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전 그때 곧 등록금 납부증서를 보여드렸잖아요』
보상을 했는데 밝혀야 하느냐는 태도로 보였다.
『선생님도 늘 바쁘신데요 뭐』
수희의 어머니는 너무 바쁘시다는 생각이 떠올라
『요즘 어머니께선 안녕하신가?』
했더니 더 바쁘시다고했다.
「마을금고」의 일까지 보시기 때문에 어머니와 얘기를 하기란 한주일 내내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수희네 경제사정은 중류정도이니 남의 돈지갑을 엿볼 필요는 없었다.
너무들 바쁘게 사는세상.
수희의 사건은 우리 사회인들에게 많은 반성을 요구했다. 가치관의 문제 이전 수희의 도벽은 텅빈가정이 문제였다.
지난 학년 말이었다.
등록금 도난 사건이 생겼다. 잃어버린「구」가 울어서 빨개진 눈에 연방 손수건을 가져가며 멍청하게 앉아있는 모습은 날 가슴아프게 했었다.
학년 말이 끝나는데 삼사기(三ㆍ四期)등록금이 미납이어서 학급 아이들은 성금으로 3기분을 내주었고 사(四)기분을「구」의 어머니는 생선장사 밑천 일부를 떼고해서 간신히 마련한 돈이었다.
『구야, 집에 가거라. 내가 꼭 찾아 주도록 하마』
구를 보내고 교무실로 내려왔더니 내 책상에는 쪽지가 놓여 있었다.
『…그러니 선생님 다음주 토요일까지는 제가 마련해서 납부하고 영수증을 선생님께 드리겠읍니다』
그저「구」의 돈을 자기가 가져갔고 보상한다는 것 외에 이름도, 아무런 단서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약속한대로 영수증이 왔고 구는 찜찜한대로 진급했고 학급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졌던 것이다.
그후 가끔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학기가 지난 지금「수희」와 면담해 보라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던것이다.
깔끔한 수희와 얘기할수록 안타까왔다.
수희가 학생으로서는 큰돈을, 그것도 남의 돈을 극장과 용돈으로 다 쓰며 다니도록 몰랐던 부모. 더구나 그돈을 이주일내로 다시 만들어서 갚앗다는 것조차 몰랐던 부모
『등록금을 이중으로 타냈어요』
이렇게 쉽게 얘기 했었지만 수희는
『일기장에 부끄러운 글을 쓰게 되지 않도록 하겠어요』
세상의 많은 수희 어머니들이 덜 바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든 관심은 집안의 내아이들에게서 부터 시작되어야 하니까.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