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광장의 10월 19일 아침-.
80만 순례자들이 거쳐간. 정리된 텅빈 광장을 바라보면서 이번 10월 18일의 신앙대회에 따른 갖가지 회포를 행사준비 요원의 한사람으로서 가져 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참회예절의 일괄 사죄때 받은 두가지 보속 중「각자의 쓰레기를 각자가 처리하자」는 둘째번 보속을 행하기(?)위해. 모두가 도시락을 먹고 난 뒷자리까지 깨끗이 치운 일이다. 과연 행사후의 광장이 행사전과 마찬가지로 깨끗했고. 「천주교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하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지난 6월의 지구별 신앙대회 때도 우리 신자들은 뒷자리 정리를 잘 한다는 말을 들은바가 있지만.
다음. 동원면에서 대성공을 거둔 대회였다고 말하고 싶다.
「80만 인파.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자!」이러한 제목을 붙인 제하의 신문ㆍ방송들은 천주교 조선교구설정1백 50돌 기념 신앙대회의 인파를 거침없이 80만으로 보도했다.
교구설정 1백50년 신앙전래 1백 97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그전반 1세기여에 걸쳐서. 기록을 남긴 순교자외에도 수만명의 신앙선조들이 박해의 고통과 순교의 피를 흘렸고 그때 뿌린 붉은피가 거듭이 돼서 이날 신앙대회 인파가 그토록 광장을 메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당초 집행위원회에서 잡은 예상인파는 신자 25만에 「와서보는」이웃이 5만명 정도 될것으로 봤다. 성체로 축성해서 신자들에게 영해줄 제병도 25만개면 되리라고 보고 준비 했는데. 이것이 빗나간 예상이 될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참례해줬다.
물론 80만이 다신자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국의 신자수가 1백30여 만인데 비해 엄청난 숫자가 대회장에 모였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다 아빠스를 포함한 20여 분의 주례주교단과 5백여 명의 사제단행진도 일치화 평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전국 전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 교회의 초대교구 창설을 경축한 것이다. 특히 지방교구중 보좌신부가 안계시는 본당의 주임사제께서도 다수 참가해 주신데 대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그분들은 서울교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요 특전미사만을 집전하고는 주일미사 없이 많은 신자들을 인솔해서 새벽 3~4시에 상경길을 서둘렀던 것으로 알고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날씨문제-.
추기경님께서 미사 끝부분 장엄축복 직전에 인삿말을 통해 말씀하신 바와같이. 전날 밤과 당일 새벽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비가 아침부터는 멎어주더니 구름이 직사광선을 가려주는 역할까지 해서 걱정 중 다행스런 날씨였다.
이런 날씨를 윗트로서 설명하신 추기경님께서 하느님께 감사의 박수를 드리자고 했을때 단상 단하의 모든이는 한마음이 돼서 열렬히. 그리고 오래도록 박수를 쳤던 것이다. 일치의그 짜릿한 감격을 우리는 맛볼수 있었다.
또 한가지-바닥이 젖어 아직 물기고인 상태에서도 온 신자들이 함께 무릎을 꿇을때의 감격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른바 귀빈석의 인사들까지도 물바닥에 무릎을 꿇을 수있는 것은 우리 공번된교회 가톨릭만의 자랑거리가 아닐런지. 이날 추기경님께서도 지적하셨지만 해가 났으면 신자석에서 보다 제단위 미사집전 주례단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회중을 바라보는 제단이 동남쪽. 바로 해를 마주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집행위측에서는 국군의 날 행사때 쓰던「로얄박스」에 제단을 꾸미겠다는 안을 올렸을때. 추기경님은 깊은 사려끝에 결단을 내려 합창단석에다 제단을 마련토록 지시하셨다. 가장 큰 이유가 회중들이 햇볕에 눈이 부시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홍보적인 측면에서 살펴볼때 행사 당일의 중계방송(KBS-TV. KBS라디오. 기독교방송)이추기경님의 강론을 끝까지 살리기 위해 예정보다 10분연장해서 2시간 10분씩의 생방송으로 나갔는가 하면「뉴스」「드라마」「스팟트」「다큐멘타리」녹음구성. 대담「프로그램」을통해 한국 천주교회가일반에게 한층「어필」할 수 있었다.
신문ㆍ잡지에도 가톨릭기사가 범람했고. 지하철버스「아취」육교현판 등에선 전문이 많이 나붙어 「붐」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이번 행사는일치를 이룬 80만의 대합창인 동시에 대화합이 이룩한「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의 잠재력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신앙대회 준비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평신도 활용의 성공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고. 대회자체가 하나의 성공사례라고 하겠다.
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집행위원회는 봄부터 가을까지 그야말로「몸으로 때우면서」희생적인 자세로 일에 몰두했던 것이다. 여기에 참여한 동료중에는 우리「일」과 관련해서 직장에서 「사표」를 내는 사태까지 빚은 경우도 있고. 링겔 주사를 맞아 가면서도 「평화가 우리와 함께」「와서 보시오」「그리스도를 우리 동네에」모셔 가자고 외쳐대고는 했다.
그러면 누가 이평신도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던가?
두말할 필요없이 지성과 젊음과 정열을 함께 갖춘 신부님들이다.
일일이 그 성함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이 그분들은 일을 통해서 참다운 사제상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하긴 이것도 「인간」이 모여서 하는 일인지라 때로는 섭섭함도 느꼈고「계층」간의 「갭」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혼자서 불만을 품은 경우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회를 일단 끝내놓고 난 이마당에 있어서. 모든것이 하느님 사업을 위한 것이고 더 잘 해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
끝으로 이번 대회에는 우리 교회 행사로서는(개신교의 경우도 포함해서) 처음으로 행사 진행을 위한 대본이 나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방송계 현역작가와 효과원의 헌신적인 참여에다 몇몇 신부님들. 그리고 전례부요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16절지 1백 1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진행대본이 작성됐고 여기에 「종합 디렉타(연출)」라는 역할을 필자가 맡아서 5시간여의 당일행사를 비교적 매끈하게 진행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최장순서에서 사제단은 모든 신자들이 퇴장할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기도와 평화의 작별인사를 나누도록 계획이 돼있었는데 그것이 실행되지 못했고 또 예상보다 워낙많은 인파로 해서 「연꽃송이의 껍질이 벗겨지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퇴장행렬이 되지 못한것이 유감이다.
그러나 이번 교구설정 1백50주년행사로서 모든것이 끝난것은 아니다. 끝이 아니라 신앙전래 2백주년을 향한 시작에 불과하다.
아뭏든 이제 우리는 참회예절때 받은 첫번째 보속인「전교」를 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로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1984년 신앙전래 2백주년을 향해 진군 할 뿐이다.
모든 이에게 「감사」와 「다짐」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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