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머니가 형을 받는 날이다. 그것도 칼날에 목을 베이는 참수형이다. 열 다섯에서 여섯살에 이르는 4형제는「불쌍한 어머니」의 고통을 덜기위해 오래 전부터 꾸며온 그들만의「음모」를 구체화하러 나선다. 4형제는 동냥과 노동으로 모은 돈을 들고 어머니의 목을 벨 희광이를 찾아갔다.
희광이는 보기만해도 끔찍할만큼 험상궂었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를 아프지않게 베어주셔요-』돈을 건네 주면서. 그리고 울먹이면서 4형제가 합창한 말은 이것 뿐이었다.
딱하고 애처롭고 눈물겨운 이「뇌물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백40여년전 서울 장안에서 있었던 실화다. 그 이튿날 어느때 보다도 날카롭게 날을 세운 희광이의 칼날아래 「아프지 않게」순교할 수 있었던 여인은 순교복자 최경환 회장의 부인 이성례였다. 그분은 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던 최양업 신부의 어머님이기도 한 분이다.
천주교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영화「초대받은 사람들」은 이 4형제의 이야기를 아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형제만 등장하면 객석에서는 손수건을 적시기에 여념이없다. 그만큼 눈물겹고 감동적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순교사화의 한 극치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영화가 잔혹하기만한 처형장면에서 끝났거나 4형제의 「뇌물」에피소드에서 멈춰버렸다면 우리의 감동은 보다 허전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속에는 극보다도 더 극적인 일들. 상상보다 더욱 잔인한 일들이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우리의 순교사화 속에도 극적이다 못해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4형제의 「뇌물」이야기 역시 그같은 일들 가운데 들어있는 드라마틱한 삽화일 뿐이다.
유능한 영화작가로서의 최하원 감독은 이점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시도한 「초대받은 사람들」의 라스트ㆍ신은 소름끼지초록 처절한 형장에서 어린 4형제가 걸어나오는장면으로 처리된다.
박명의 어둠속에 모래밭을 떠나 걷기시작하는 4형제는 동녘하늘의 빛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때 카메라는 동녘하늘에 머무르지 않고 4형제의 얼굴을 쫓는다.
4형제의 얼굴. 그렇게도 맑은 그 얼굴들은 바로 희망이며 미래다. 그것이 1백 40여 년을 건너 뛰어 오늘의 교회에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에 우리는 다만 숙연하게 승복할 뿐이다. 영화는 끝나지만 우리는 시작에 서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종말이 죽음과 잔혹과 통곡의 순간에서 한치도 더 나아감이 없었다면 그 같은 종말의 북소리가 오늘의 교회에 곧바로 이어진 것이라면.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캄캄한 절망감과 분노를 안은 채 자리를 떠야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감독은 참으로 큰 일을 해냈다. 그는 이 영화의 대본을 직접 썼고 주저하는 흥행업자를 설득했으며. 영화같은 의지로 훌륭한 극영화를 완성했다.
종교를 주제로한 영화를 종교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오로지 최감독의 작가적 역량에 기인한 것이며. 그같은 역량은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수상이 이미 객관적으로 평가ㆍ입증해주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최감독의 신앙심에 경애의 마음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주제로서의 「순교」는 영상이나 영화적인 기술만으로 표현이 가능할만큼 손쉬운 주제가 아니라고 할때. 그의 성공은 그의 돈독한 신앙심에서 출발한 것이고 기도를 통해 힘을 얻은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해. 한 작가의 모든 것을 담아놓은 예술적인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고도 부분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예술작품이 겪는 숙명이다. 어느 때는 전적인 부정론에 부딪치게도 된다.
그러나 이작품「초대받은 사람들」의 경우는 모처럼 만에 경험하는 장중한 감동이 많은 결함들을 감싸고 있음을 알게한다. 오히려 그같은 결함에 대한 용훼를 용서하지 않는다.
제작회사의 용기. 연기자들의 진지한 노력. 격앙되기 쉬운 분위기를 차분하게 승화시켜 나간 음악. 그리고 모든 스탭들의 기적과도 같은 노력의 결과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은 영화속에서 순교한 우리들의 선조들을 앞세워 지금 우리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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