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뜨르」를 거쳐「슈농소」궁과「샹블」궁을 관광하고 「앙굴리엠」에서 일박한 한국순례단은 다시 「루르드」를 향해 순례길을 재촉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농가의 지붕은 점차 붉은 색으로 변하고 울창한 소나무가 높고 낮은 구릉을 덮고 있다.
「아젱」을 지나니 길은 차츰 험해지고 굴곡이 심한 전형적인 농촌길로 접어든다.
밀 수확철을 맞아 들녘에는 한창 일손이 바쁜 농번기인데도 가로수 아래 철제의자에 앉아 망중한(忙中閑)을 즐기고 있는 주민들의 표정에서는 조금도 쫓기는 빛을 찾을 수가 없다.
오후 3시40분. 순례단은「루르드」에 가까운「아쇼」에 도착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숨가쁘게 올라가니 정상에 1400년대에 건립한 성모성탄 성당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얼핏 거대한 석조건물처럼 보이나 자세히 관찰해 보니 큰시멘트 불럭으로 건조한. 비교적 근세의 성전임을 알 수 있었다.
성당안에서 다시 小성당이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를 긴 회당이 감싸고 있다. 성당안에는 기념엽서 자동판매기가 2곳에 설치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엽서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小성당 안벽에는 검은색의 장엄한 목각들이 제단쪽을 제회한 3면을 장식하고 있고 성당바닥 좌우에는 목각을한 의자가 2층으로 각각 길게 놓여있다.
한국 순례단은「루르드」에 들어가기전 이곳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다. 가마득히 높은「돔」형 천정을 울리는 힘찬성가가 성당안에 메아리치는 가운데 사제단이 입장하자 그때까지만 해도 기념사진들을 찍으며 법석들을 떨던 외국 관광객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이곳에서 미사를 봉헌한 순례단은「루르드」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일용품을 구입하고 5시 10분 다시「루르드」를 향해 떠났다.
북부 프랑스와는 판이하게 구릉이 많은 시골길을 2시간30분 가량 달리니 아담한 시가가 나온다.
우리는 이제 전세계의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하고 있는곳 -「루르드」에 들어선 것이다.
1800년대말 까지만 해도 한촌(寒村)에 불과하던 이곳이 지금은 전세계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세계적인 순례도시로 변모했다.
좁은 시가지는 성체대회 참가자들을 실은 버스로 꽉차있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국순례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흥분으로 상기돼 있었다. 버스가「루르드」동굴입구 근처에 이르렀을때 「루르드」에 본원을 두고있는 한국 사도직 협조자 회원들이 나와 반갑게 손을 흔든다.
오후 8시 호텔에 도착. 여정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마친 순례단은 곧바로 성모동굴 참배에 나섰다.
가브강이 굽이쳐 섬처럼 격리된「루르드」동굴 일대에는 각국 순례단으로 가득찼다. 압박속의 커다란 자연동굴로 된 성모동굴에는 성모께서 발현한 바로 그 자리에 성모상이 자리잡고 있고 성모께서 가르쳐 파낸 중앙제단 왼쪽 바닥의 기적의 샘에서는 맑은 물이 샘솟고 있었다.
동굴 앞에는 장궤를 하고있는 사람. 엎드려 두손을 높이 쳐들고 있는 사람. 휠체어에 몸을 담은채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있는 사람등등 하나같이 성모께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로 꽉 메워져 있다.
동굴안 제대 옆에 훨훨 타오르는 촛불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한국순례단은 조심스레 성모동굴로 들어가 성모께서 발현했던 바위에 친구들을 했다.
거친 바위는 순례객들의 손길에 닳아 윤기가 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의 한많은 염원들이 담겨져 있기에 이 거친 바위가 이토록 닳아 윤기마저 나고 있을까?
이글거리는 촛불에 반사된 성모상은 지금이라도 곧 성큼 내려와 죄인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라시던 그 인자한 음성을 들려주실 것만 같다.
죄인들과 병자들을 특별히 사랑하시며 오늘 이토록 우리들을 초대해주신 성모의 사랑에 우리는 어떠한 보답을 드려야 할지-.
어둠이 짙어가는 동굴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일어설 줄을 모른다.
「루르드」에 오기까지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토록 많은 사진들을 찍었는데도 유독 이 동굴 앞에서 만은 카메라 샷터를 누를 수가 없다.
이많은 사람들의 고요한 기도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되어 이 고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윽고 저멀리서 부터 서서히 촛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하나의 기나긴 대열을 이루며 바실리카 옆을 지나넓은 광장옆을 끼고 나아간다.
고요한 「루르드」계곡에 아베 마리아 찬가가 멀리멀리 메아리친다.
그것은 하나의 장관이었다. 또한 그것은 전세계 남녀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뭉쳐 이룩한 하나의 굳센 신앙의 대열이기도 했다.
한국순례단은 기나긴 여정의 피로도 잊은채 촛불여행 대열속에 하나 둘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차게 노래했다. 아베 아베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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