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위대한 교부들중의 한 사람이었던 성 암브로시오는 340년경 독일「가울」에서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그 지방 총독이었던 부친을 여윈 암브로시오는「로마」로 옮겨가 철저한 교육을 받은 후 시인과 유명한 연설가가 되었다.
372년 그의 나이 32세때 암브로시오는 자애와 정의에 입각한 정치를 하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존경을 받게되었다.
394년「밀라노」의 대주교가 서거하자 후임 주교선출이 아리오 이단자들의 방해로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상태까지 이르게됐다.
이를 무마키 위해 총독 암브로시오가 그곳을 방문했을때 군중들은 그를 주교로 추천하면서 영세도 받지않은 그에게 주교로 취임할 것을 계속 요구했다.
신자는 물론 인근 주교 및 성직자들까지도 주교로 추천하게 되자 암브로시오는 교리지식에 능통하였기에 단시일내에 영세와 신품을 받아 사제가 되었고 374년 12월 7일「밀라노」주교로 축성되었다.
그후 암브로시오는 기도ㆍ교리연구ㆍ자선사업에 전념하는 한편 특히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신학연구에 몰두하여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다
신자들의 교리지식을 북돋우기 위해 노력한 암브로시오는 강론을 통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으며 그들의 신심을 돈독히 만들었다.
특히 성 아우구스띠노의 어머니인 성녀 모니까도 암브로시오를 찾아가 아들의 회개를 위해 지도해 줄것을 눈물로 요청했으며, 아우구스띠노도 그의 설교를 듣고 대화하는 사이에 회개하여 후일 위대한 성인이 되기도 했다.
또 테살로니까인들의 반란에 대해 테오도시오 황제가 그지방 주민을 무차별 처치하게되자, 암브로시오는 즉시 황제에게 서한을 보내 통회하고 보속하며 고행할 것을 권유하는 동시에 당분간 성당에 나오는 것을 금하였다.
이에 테오도시오 황제가 암브로시오의 뜻을 받아들여 진정으로 참회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암브로시오의 권위는 더 높아졌고 황제의 겸손 지덕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397년 4월 3일 성금요일 마지막 성체를 영한후 숨을 거둔 주교학자 성암브로시오의 축일은 12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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