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은 16세기 종교 개혁의 와중에서 교회의 쇄신과 열렬한 종교활동으로 쇠퇴했던 교세를 회복하는데 힘쓴 성인들 중에 한사람이다.
요한은 1542년 6월 24일 스페인 까스띨리아州「폰띠베로스」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명문 귀족이었으나 가난한 고아처녀인 그의 어머니와 결혼함으로써 친척들로부터 버림받아 요한이 태어날 당시에는 가세가 매우 기울었다.
생활고에 시달린 그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메디나」로 옮겨가서 요한을 목공소ㆍ양복점 등에 보내 기술을 습득토록 했으나 요한은 그런 일에 도무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그후「메디나」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면서 휴무시간을 이용, 예수회가 경영하는 신학교에 다녔다.
신학교 졸업 후 병원전속 신부가 되려했으나 하느님의 섭리는 요한을 까르멜 수도원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십자가의 요한은 까르멜 수도원에서의 착복식 때 얻은 이름이다.
당시 퇴폐한 시대사조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이 나태해진 까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요한은「아빌라」의 데레사와 함께 노력했다.
요한은 안또니오 수사와 함께 가난한 수도원에서 금욕과 극기 및 고행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사람들의 회개를 부르짖었다.
이에 감명을 받은 많은이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자 요한은 손수 그들의 수련을 담당하고 기도와 희생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다른 수사들의 시기로 요한은 까르멜 총회에서 총장의 오해를 받아 수도원 지하실에 감금돼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았으나 이를 묵묵히 참아 내었다.
이러한 요한의 성덕과 결백함은 곧 드러나 교황삐오 5세 및 그레고리오 13세는 그의 수도회를 공인비준하기도 했다.
1588년 까르멜 총회에서 다시 비난의 대상이된 요한은 미국으로 전임되어 그곳으로 향하던 중 열병에 걸려 1591년 1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까르멜산에 오름」「영혼의 암흑」등 신비신학의 명저를 남긴 십자가의 성요한은 1726년 시성됐으며 축일은 12월 1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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