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대학생들의 라디오 토론회에서「바람직한 오늘의 친구 관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학생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오늘의 친구관계란 서로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쌍방의 명확한 계산과 이해득실 위에 성립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동석한 문학 평론가 한분이 그들의 너무나도 이해 타산적이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에 충격을 받았다며 질문하기를『타산적인 두 친구 사이에서 신뢰와 믿음이 생기겠는가? 한 친구의 어리숙한 몰아적 믿음과 충실성이 타산적인 친구의 마음을 변화 시키지 않겠는가?』했다.
그때 한 학생이 대답하기를『그런 친구라면 요즘에는 바보 얼간이라 하여 따돌림받지, 그런자를 친구라고 사귀지 않는다』고 했다. 셈하고 계산하는 관계로서의 친구와 믿고 의지하는 관계로서의 친구를 과연 같은 수준에서 볼 수 있을까?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과 믿음으로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 하느님은 약속에 충실하셨으나 인간은 불충실 했음이 두드려졌다. 성서는 배신한 이스라엘을「놀아난계집」(호세아1장7), 「창녀」(에제키엘16장35)라고 부르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배신을 당하면서도 당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 하셨다. 『내 사랑을 거두지는 않으리라』(사무엘하 7장 15) 하느님은 약속대로 구세주를 보내셨고, 인간은 또 그분을 배척했다. 구세주 그리스도는 이제 당신의 몸과 피로 다시 사랑의 계약을 체결했다. 전인적 계약이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자도 그 사랑의 계약에, 전인격과 전인생을 걸고 응답하려고 애쓰고 있다.
마리아의 응답이 그러했다. 처녀로서 아기를 갖는다는 불가사의한 말씀에『그대로 내게 이루어 지소서』하고 전폭적인 믿음으로 응답했다.
한 친구를 믿는데로 명확한 계산과 이해타산 위에서 찾고 있는 현대인은 역시 전인적ㆍ몰아적ㆍ헌신적 그리고 충실한 믿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세상은 불신이 만연하고, 어떠한 약속이라도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저버리는, 그래서 선의의 많은 사람들이 더욱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하는 세상이 되어간다.
마리아가 있었기에 예수의 성탄이 이루어졌다. 속고 속아도 우리는 어리석게, 또 한번 믿어볼 필요가있다. 『단한명의 진실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99명에게 사기를 당하겠다』던 어떤 신부님의 얘기가 생각난다. 한마디 약속 때문에 일생을 성직자ㆍ수도자로 생활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약속을 식은죽 먹듯 삼키는 삶도 있다. 비록 친구간의 사소한 약속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농담이 아닌한 성실 해야겠고 한마디말 때문에 당하는 어떠한 손해나 수모까지도 마다않은 생활의 증거를 통해 약속과 믿음의 가치를 올려 놓아야겠다.
믿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의 응답이요, 이 사랑에의 충실성이다. 『은총을 영원토록 그에게 내리리니 그에게는 내 계약이 굳게 남아있으리라』(시편 88편 29ㆍ오늘 미사 층계송)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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