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 대림절 동안 우리는 구세주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쁘고 뜻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다해왔다. 금년 성탄절을 맞아 본보는 강제수용소라는 무섭고도 암담함 속에서, 주임을 가까이할 자유도 박탈 당한채 성탄절을 맞이했던 선교사들의 고행과 기쁨, 그리고 그 당시의 상황을 포교 성베네딕또 수녀회 부원장 채인숙 수녀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참으로 가난하게 이땅에 오신 베들레헴의 아기예수의 탄생의 참뜻을 깊이 묵상하고 체험할 수 있었던 성탄절 이었습니다』강제수용이라는 상상도 못할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4번이나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니 지금은 두려움보다는 기쁨과 희망이 그리고 주의 크신 사랑과 함께 신앙의 힘이 새롭게 치솟는 것 같다는 포교 성베네딕또수회 부원장 제사르 벨트뷔나(채인숙 69세)수녀.
이들 선교사들은 매년 성탄절마다 부족함 속에서도 기쁘게 구유를 조금씩 달리 잠식하고 전례에 참여했다.
한나라 한민족 이지만 지금은 갈수도 올수도 없는 이북땅. 그러나 우리민족에게 주님의 복음말씀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국만리 낯선 타국땅 선교사를 자청해 온 이들 벽안의 선교사들은 8ㆍ15 해방이후 차츰차츰 더해가는 공산당의 횡포를 피부로 느껴왔다.
마침내 49년 5월 체포될 당시 함흥 수녀원 분원장으로 있던 채수녀를 비롯한 5명의 수녀들은 피할틈도 없이 들이닥친 공산당에 의해 함흥교도소로、평양교도소로 수감됐다. 이때 서로 만나 안부들을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붙들린 독일인 신부 수사 수녀들은 모두 68명. 이곳에서 3개월간이나 조사와 문초를 받으며 지내왔다.특히 수도복은 체포되는 날로 빼앗기고 속치마차림으로 1평남짓한 독방에 수감、움직일수도 누울수도 없었고 식사 또한 연일 맞지 않는 콩밥으로 끼니를 잇다보니 체력은 약해져만 갔다.
강계수용소로 이동될 때 수녀들은 수녀원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갈수 있게 해달라는 애원을 무시당한채 속치마차림으로 군용열차에 실려가는 곤욕을 치루기도했다.
고산지방으로 사방이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강계수용소에는 함께 붙들린 68명의 선교사중 57명만이 수용돼 54년 중국을 거쳐 시베리아를 경유、본국으로 송한될때까지 약5년간의 지루하고 막막한 수용소 생활은 시작됐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뭣보다도 주민들의 접근이 완전 통제된 상태에서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으나 항상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속에 서로를 격려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미사도구를 몰래 갖고있는 이가 있었고 제병 또한 조금 간직하고 있었기에 이들 선교사들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움속에서도 매일 미사를 봉헌、주님을 모시는 기쁨속에 생활했다.
또한 수용소 외곽에서 통행로만을 지키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조그만 성당을 마련하고 매일 전례에 따라 미사와 공동기도 생활을 했다.
그리고 군인들이 운반해온 보급품 속에서 평상복을 찾아 갈아입은 선교사들은 곡식 가운데 보리에 섞여있는 약간의 밀을 발견、기쁨속에 일일이 한알한알 골라냈다. 그래서 반을 갈라 부족한 제병을 만들고 받은 그해 가을 파종을 하기도 했다.
한편 선교사들은 전기불도 촛불도 없는 깜깜한 밤을 산에서 모아온 송진을 양철 쟁반에 담아 미사때 밝혔고 갖고있던 기도서와 성가책이 몇권 안됐지만 각자 마음을 다해기도 했다. 비누가 없어 깨끗이 씻지도 못한 더러운 손으로 받아 모시는 영성체였지만 이나마 할 수 있는 영성체 생활은 내일의 향방을 알수 없는、언제까지 계속 될지 모르는 이생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이들로 하여금 참행복과 기쁨을 만끽할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낮에 밭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돌아올때는 주위 산속에서 진귀한 열매나 나뭇잎ㆍ동등 갖가지 것들을 모아다가 미리미리 구유장식 준비와 아울러 선교사들 간의 성탄 선물 마련에 만전을 기하기도 했다.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맞은 49년 성탄절. 정말 선교사들은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유를 장식했다. 비록 옛날과는 달리 장식할 아기예수도 초도 리본도 없었지만 선교사들은 먼저 아주 멋진 고목을 구해다가 성당에 설치하고 아끼고 아끼던 조그만 비누로 아기예수를 조가했고 대패밥에다 머큐로크롬을 발라 빨간리본을 만들었다.
또 나무로 초랑 각종 장식품을 조각하여 달고 송진으로 불을 밝혀 그럴 듯한 구유를 완성했다.
빈약 했지만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이 구유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이 세상에 오신 아기예수의 탄생을 마음깊이 묵상하고 체험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또한 수녀들은 밀가루가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 말려뒀던 누룽지로 성탄과자를 만들고 피난간 주민들이 심었다가 미처 수확을 하지못한 누른 호박으로 성탄케익을 만드는등 모든것의 부족함 속에서도 선교사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마음을 모아 구세주 강생을 찬미했다.
특히 수용소에서 맞은 성탄절은 화려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았지만 마구간에서 비천하게 태어나 온갖 멸시속에서도 참기쁨을 갖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아기예수의 탄생의 참의미를 깨우치는 뜻깊은 성탄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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