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꼴라레운동의 창설자인 끼아라루빅이 구랍30일 내한, 훠꼴라레 운동이 가족들과 신자들과 위해「일치」를 주제로 한 강연회를 갖는 등 8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지난 8일 한국을 떠났다. 끼아라 루빅의 방한을 계기로 그의 생애와 사상 등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휘꼴라레운동의 창시자 끼아라루빅은 61년전 북이태리의 「트렌트」에서 출생했다. 경제적으로 풍붙이 못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학교에 다는 동안에도 가정교사를 하여 생활비를 보태었다. 후에는 교사가 되어 「트렌트」근처에 있는 산마을에서 교편을 잡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가톨릭학생회에 참여하던 그는 19살 때 중부이태리 「로렛또」에서 열린 전국적인 피정에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거기서 그는 자신의 영성생활에 있어 결정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이 운동이 유래되었으니 그의 이 체험은 또한 이 운동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로렛또」에는 예수 마리아 요셉성인이 사시던 「나자렛」의 작은 집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성가정이 머무시던 이 집을 찾아갔을 때 끼아라루빅은 어떤 길로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르고 계시는 지를 직감했다. 그것은 수녀로서 수도원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기 집에 머물며 일하면서 개인적인 봉헌을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길이었다. 비록 「나자렛」가정의 길, 세상에 머무는 하느님 가정의 길, 곧 네 번째 길로서, 이는 위에 말한 세 가지 길과 공통된 요소들을 그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기대로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휘꼴라레가 탄생되었으니, 이는 하느님께 스스로를 봉헌하는 남녀 동정인들, 그리고 그들 고유의 봉헌방식을 갖는 기혼자들이 각기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내가 너희들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13ㆍ34)하신 예수의 새 계명을 실천하고 거기서 힘을 얻는 이들로서, 그들은 예수께서 「나자렛」성가정 안에 실지로 현존하셨듯이 오늘날에는 영신적으로, 그러나 그때처럼 실제적으로, 그분 자신이 약속하신 바 사랑이 지배하는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심을 체험하고 증거하려 한다. 예수께서는 『단 주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라 약속하셨던 것이다. 결국 1944년 「트렌트」에서는 끼아라 루빅을 중심으로 한 첫 여자 휘꼴라레가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트렌트」는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었으므로 몹시 비참한 결과를 가져와 많은 집과 꿈들이 무너졌고, 이로 인해 끼아라 루빅이 얼마 전 깨달은 극히 새로운 이상, 즉 그의 생활에 완전히 새로운 일면을 제시해 준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깨달음은 한층 더 큰 빛을 받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각자를 무한히 그리고 개별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트렌트」의 많은 사람들이 이 현실에 접하게 되었다. 끼아라와 더불어 첫 휘꼴라레를 이룩한 친구들 뿐 아니라 연령ㆍ사회계통ㆍ성소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이들은 모두 가능한한 복음에 부합된 생활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려는 꼭 같은 열망을 지니고 있었다. 성서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실천에 옮기려 노력하는 동안 그들은 이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한 말씀, 한 말씀이 빛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또한 예수의 마지막 기도 즉, 그분의 유언인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는 극히 특별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예수의 모든 사명을 요약하는 듯한 이 구절은 끼아라 루빅 및 그의 친구들의 정신과 마음에 형용할 수 없으리 만큼 큰 감명을 주었으며, 그들은 이 구절을 실현시키기 위해 주력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당시 태어나고 있던 이 운동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1948년에는 첫 남자 휘꼴라레가 태어났으며, 같은 해에 이지노죠르다니가 끼아라 루빅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당시 이태리 정치 문화계의 저명한 인사였으며 위대한 가톨릭 저술가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이 정신을 깊이 받아들여 첫 기혼 휘꼴라리노가 되었으며, 그의 현존으로 이 운동은 새로운 시야를 열고 전파되며 발전하게 되었다.
휘꼴라레와 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우선 이태리에,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 및 다른 대륙에서도(1958년부터 시작하여) 점점 불어나는 동안 끼아라 루빅은 하느님의 뜻이 계시하는 바라고 여겨질 때 마다 이 운동 안에 여러 개의 부문 및 사업을 탄생시켰다.
이렇게 해서 「솔선자」 부문이 탄생되었으니 이는 일치의 정신을 사회생활 안에 침투시키려는 사람들의 부문을 말하며 또한 사제부문, 청소년 및 어린이 부문인 젠(새세대) 운동 등이 태어나게 되었다. 남녀수도자들 역시 그들대로 자신들의 영성과 조화로이 발맞추어 나아가면서 휘꼴라레 정신이 낳는 체험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1956년 루빅은 정기간행물 「새도시」지를 창간하였으니 이는 이 운동에 속한 사람들 간에 긴밀한 유대를 맺어주는 도구로써 즉시 이 운동 밖의 다른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이것이 그들의 영혼을 키우는 수단이 됨을 입증하여 현재 이 잡지는 8개 국어로 출판되고 이를 뒤이어 동명(同名)의 출판사가 개설되었고 여기서는 영성ㆍ신학ㆍ철학ㆍ교부학ㆍ회학 등의 서적을 간행하고 있다.
1964년에는 이태리의 「플로렌스」근교에 「로삐아노」라고 하는 한소도시가 생겨났으니 이는 여러 대륙의 많은 나라(40개국 이상)에서 모여온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지만 가정을 지닌 기혼자들도 있으며 이들은 예수께서 이루고자 하신 일치의 눈에 보이는 증거가 되고자 한다.
「로삐아노」의 뒤를 이어 이와 비슷한 소도시들이 마프리카(카메룬)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위스에 생겨났으며 독일에는 교회일치의 소도시가 건선되었다. 루빅과 그의 운동이 우연히 발을 들여 놓게 되어 매우 큰 결실을 맺고 있는 분야가 바로 교회 일치 운동 분야이다. 개신교 신자들, 동방 정교회 신자들, 성공회 신자들과의 접촉은 매우 발람직한 결실을 낳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간의 사랑이 감도는 분위기에 싸이게 됨으로써 상대편에 대한 존경과 이해를 낳아, 낡은 편견을 무너뜨리게 하기 때문이다. 동방교회, 성공회 및 여러 교파의 개신교지도자들이 수차 루빅과 개인적인 접촉을 가졌으며 그들은 모두 그들 교회 안에 이 운동의 정신을 전파시킬 것을 루빅에게 당부하였다.
1977년 끼아라 루빅은 템플런상(노벨상과 대등한 조교계 상으로서 마더 데레사, 로저 슈쯔 원장, 수위넌스 추기경 등에게 수여되었음)을 받게 되었으며, 심사위원측에서는 그에게 이상을 수여하게 된 동기를 대충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오늘날 크리스찬 간의 일치를 증진시키는 면에서 그가 기여한 바는 교회 간이나 종교 간의 상호관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결실들 중의 하나이다』
끼아라 루빅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에 기반을 둔 생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들이 참된 공동체를 이루며 다른 사람들을 순수한 사랑의 정신으로 단합시킬 수 있도록 고무하였다. 이는 루릭의 일치를 위한 봉사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었다. 즉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형제들과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인, 유태교인, 이슬람 교인들과 유익한 접촉을 가지게 되었으며 각 지역에서 이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휘꼴라레 운동의 정신은 여러 종교인들을 단합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운동의 가족들을 방문하기 위해 시도된, 이번 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중에도 끼아라 루빅은 불교 지도자들의 초청을 받아 그들과 개별적 면담을 갖는 동시에 그들의 공동체에 속한 신도들과 직접 접촉을 갖게 되어, 일본에서는 리쇼 꼬세이 까이의 불교신자 1만 명에게 그의 체험담을 들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들은 구랍 28일 「東京」에 모였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 운동의 정신 및 그 활동에 대해 수차 걸쳐 경의를 표하셨다.
또한 최근 루빅에게 개별 알현을 허락하신 자리에서 거듭 이 운동에 대해 신뢰심을 표하시며, 소리 없이 생활을 통하여 깊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며 그들에게로 접근해 가는 이 운동의 노선에 따라 일치를 위한 작업을 계속 추진해 나아가라고 고무하셨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