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고통 앞에 인간의 논리는 무력해진다. 아픔을 참아라든가 건강이 좀 어떠시냐는 등의 인사치레는 될지언정 병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에게 큰 도움은 되지 못한다.
마음이 따르지않는 물질적 도움도 사실 그리 달가운 것이 못된다.
15회째 맞는 구라주일이다. 불치도 유전도 아닌 나병이지만 유달리 소외되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 병이기에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세상의 고통은 절대 별개의 것,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속죄도 구원도 연대적이며 함께 나누어야 할 일들이다. 내가 건강하다고, 내가 부유하다고 그것이 나에게만 내리는 축복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가 병들고 그가 가난하다고 그가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은 더욱 아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소경이 있듯이 형제적 사랑을 위해 병자와 가난한 자들이 있다. 고통 받는 자들은 어떻게 보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누어 지고 있는 자들이다. 바오로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남은 몫을 나누어져야 할 자들이다. 세상의 고통은 나누어야 줄어들게 마련이다.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이 있듯이.
매주일 칠곡 가톨릭피부과병원 미사를 드리며 나환자들과 가까와졌다. 비록 피부가 거칠고 보기에는 딱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어느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곱고 부드럽기만 하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명심해야 할 일은 도움만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을 돕는 은인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후원사업에 있어서도 그들의 정성은 대단하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병과 고통만을 바라보고 있지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통위에 또한 세상의 고통을 바라보며 짊어지고 있다.
주님께서는 병자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는 곧 당신께 대한 무관심이요 냉대이며, 마지막 심판은 바로 이 사랑의 행위에 따라 최대의 결단이 내려질 것임을 밝히고 계신다. (마태오25장)
병과 고통 중에서 부르짖던 욥의 쓰디쓴 말을 그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 이 원통한 심정을 저울질하고 이 재앙도 함께 달아 보았으면. 바닷가 모래보다도 무거우리니, 나의 말이 거칠다면 그 때문이리라. 전능하신분의 화살이 몸에 박혀 나의 영혼은 그 독을 마시고 있는데 하느님의 두려움이 나를 휘몰아치는구나. 뜯을 풀이 있는데 나귀가 울겠는가? 꼴이 있는데 소가 울겠는가?… 오, 나 청을 올릴 수 있어 하느님께서 나의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면, 그리하여 나를 산산이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죽여주신다면, 차라리 그것으로 나는 위로를 받고 견딜수 없이 괴롭지만, 오히려 기뻐뛰리라」(욥기6장2~10절)
우리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욥과 같은 입장에서 부르짖고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욥과 같은 비탄속에서, 하느님께서 그 비참하고 잊혀진 사람들의 친구가 되심을 깨닫고 있을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욥의 친구들과 같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자네가 이 지경을 당하자 기가 꺾이고, 매를 좀 맞았다고 이렇듯 허둥대다니, 될 말인가?… 죄없이 망한 이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바로 쓰고 비명에 죽은 이가 어디 있는가?」(욥기4장5~7) 그리고는 손을 탁탁 털고 『잘 참아보게』하고 말것인가?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말라』(오늘 미사 층계송ㆍ시편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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