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요한 보스꼬는 1815년 8월 16일 북부이태리 「뻬찌」의 작은 마을에서 출생했다.
근면하고 독실한 부모 밑에서 자라난 요한 보스꼬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남달리 두터웠다.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윈 요한 보스꼬는 13세부터 농삿일로부터 양복공ㆍ제과공제화공ㆍ목수 등으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으며 그 후 자신의 힘으로 대학과 신학교를 나와 사제가 되었다.
성모께 특별한 공경을 바쳤던 요한 보스꼬는 r교황총의 은혜로 심신을 단련해 나갔는데 금욕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아이들을 모아놓고 손장난 등으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또 함께 기도하고 했다.
1841년 4월5일 사제품을 받은 요한 보스꼬는 「도리노」에 있던 두 친구, 성 요셉 가파쏘와 성 고도텡고의 권유로 박애사업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요한 보스꼬는 버림받은 고아들을 모아 그들에게 기술과 공부를 가르쳤는데 당시에는 고아원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요한 보스꼬를 도와 고아들을 보살펴주었다.
아이들이 요한 보스꼬를 사랑하고 따랐으므로 요한 보스꼬는 그들이 모여 놀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아이들의 소음에 이웃의 불평이 높아지자 요한 보스꼬는 낡은 헛간을 수리하여 그곳을 기도소라 부르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놀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기도소를 시작으로 요한 보스꼬는 공동작업장ㆍ학교 등을 설립했다.
요한 보스꼬는 그의 사업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 「살레시오 성 프란치스꼬의 신심회」라는 수도원을 창설, 1859년12월18일 삐오9세를 알현하고 수도회의 인가를 요청했으며 다시 1875년 살레시오수녀원도 창설했다.
이 두 수도회는 청소년교육과 직업기술 교육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으며 교회 내에서 세번째로 큰 수도회가 되었다.
1887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요한 보스꼬는 1934년 교황 삐오11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한 보스꼬의 측일은 1월 3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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