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계기로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제도적이고 법적인 교회로부터 사귐과 참여의 교회로 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늘의 본당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정신으로 쇄신되고 있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나마 공의회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본당의 조직, 전례 교리교육 분야에서 쇄신되고 있다. 사목자들은 백성과 함께 활동하고 있고 봉사의 정신으로 사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목자들과 백성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고 본당 전 신자를 참여시키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본당과 지역사회 사이에도 거리감이 있다고 본다. 오늘의 본당을 분석해보고 새로운 모습의 본당은 어떤 것인지 고찰해보기로 한다.
오늘의 본당상
오늘의 본당은 오랜 전통으로 말미암아 성사집전 중심의 장소이며 행정적인 제도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당은 성체성사가 집전되는 주일미사에 전체신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확률도 대도시 본당에는 높지만 농어촌 본당에서는 저조한 실정이다. 주일과 대축일을 의무적으로 지키는 신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오늘의 본당이 얼마나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가? 한마디로 전체신자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본당의 모습은 엿볼 수 없다.
오늘의 본당은 물론 과거보다는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예를 들면 본당에 사목협의회가 조직되어 있고 여러 단체들이 본당발전을 위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본당전체신자들 가운데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소외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의 본당은 여성화되어 가고 있으며 많은 남성 신자들이 본당을 멀리하고 있다. 본당이 참으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남녀노소, 사회적 지분 직업 등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다양성이 없이 하나의 공동체가 이룩될 수 없다.
오늘의 본당이 다만 성사집전의 장소가 된다면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없다고 본다. 물론 본당에서 성사가 집전됨으로써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고 공동체의 모습도 어느 정도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성사집전이 과연 교회의 공동체성을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미사를 비롯해서 고백성사 성세성사, 견진성사 등이 너무도 기계적이고 습관적으로 집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사를 통해서 공동체성이 드러나야 하고 성사에 참여하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하나의 공동체임을 체험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본당을 책임지고 있는 사목자들이 문제이다.
우선 본당주임 사제들의 의식구조가 구태의연하며 본당사목을 독자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문제이다. 특히 도시본당의 경우 신자들의 숫자가 증가하고 여러 단체들을 관장하고 성사집전에 몰두한 나머지 사제들이 정신적 여유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본당을 공동체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어떤 사목목표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각 본당마다 조직되어 있는 사목협의회의 성격과 기능도 문제가 되고 있다. 사목협의회는 주임신부를 자문하는 기관이며 여러 분과위원회는 본당사목의 활동 분야를 담낭하고 있다. 그런데 흔히 이 사목협의회가 명칭으로만 존재할 뿐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목협의회가 매달 열리고 있지만 사목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때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목위원들이 본당 사목을 위하여 너무나도 소극적이다. 따라서 각분과 위원회도 사목 각 분야별로 구분해 놓았을 뿐 실제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본당 사목은 주임신부가 독점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본당에 현존하는 여러 단체들은 그 나름대로 각기 맡은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떤 단체에 속해있는 회원들은 어느 정도 그 희원들끼리 공동체를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 단체에도 예속되지 않은 대다수의 신자들은 주일미사에만 참여할 뿐 공동체의식도 가질 수 없고, 본당 공동체로부터 어떤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본당에 현존하는 각 단체는 자기들의 단체만의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다른 단체와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본당내의 어떤 게토(Ghetto)를 형성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본당이 참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각 단체들 간에 정규적인 유대관계를 가짐으로써 한 형제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이라든가 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행되고 있는 교육이나 피정은 본당의 특수층에 속하는 소수의 신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본당 신자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교육이나 피정은 거의 없다. 거기에서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 피정을 통해서 공동체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아직도 개인적인 신심 향상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본당에 내재되어 있는 몇 가지 문제를 분석해 본 결과 지금의 사목방법으로는 본당이 새로워지기가 어렵다.
새로운 본당상
현존하는 본당은 분명히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미흡한 상태이다. 본당을 쇄신하기 위하여 주임사제들은 물론 뜻있는 사목위원들의 노력은 계속 되어왔다. 그런데 본당을 쇄신하는데 있어서 성형수술을 하는 식의 방법은 지양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본당은 새로워질 수 없다. 본당이 하느님과 인간들과의 사귐의 곳이고 신앙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사목자들은 물론 본당의 모든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사목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요구되며 새로운 제도도 도입이 되어야 한다. 사목이란 무엇인가? 사목은 全교회가 여러 단체의 회원들과 모든 이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각자의 성소에 점차적으로 응답하게 된다. 인간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전례, 성사와 형제애 등의 필수적인 매개체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과 구원을 얻게 된다. 즉 그들은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 성성에 나아가게 된다. 사목은 무엇보다도 역사 안에 적극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행위이다. 따라서 사목은 역사 안에서 하느님 현존의 표지를 읽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목은 인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봉사이며,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는 인간들에 대한 봉사인 것이다. 이 봉사는 타인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이 바로 신한적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사목의 목표는 인간에게 있다. 모든 단체와 백성이 복음에 응답하게 함으로써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성성에 도달하게 한다. 즉 하느님과의 사귐, 인간들 사이의 사귐, 그리고 우주와의 사귐을 통해서 각자는 성성의 길에 나아가게 된다. 사목은 성직자들만의 독점적 봉사가 아니라 하느님백성 전체의 봉사이다. 각자가 받은 카리스마와 재능에 따라서 각자는 독특한 봉사를 하게 된다. 하느님 백성은 모두가 전 인류 앞에 복음화의 책임을 지게 된다. 사목적 봉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전례와 기도와 형제애를 통해서 실현된다. 사목적 봉사의 수단은 언제나 공동체를 점차적으로 형성하고 교육하는데 목표를 두고 평가되어야 한다.
새로운 본당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10여년전부터 도입된 제도가 「크리스찬 기초 공동체」이다. 본당이 비대해짐에 따라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기초 공동체를 형성하고 활성화하는데 있다. 이상적인 본당은 결국 지역교회(교구)안에서 여러개의 기초공동체가 유기적이고도 역동적인 사귐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찬 기초 공동체」(BㆍCㆍC)에 대해서는 다음호에 연재하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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