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나도 남을 위해서 봉사할 수가 있다는 기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악질병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병입니다. 연대에 와서는 나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발견해서 나병도 고칠 수 있고 결핵약을 발견해서 결핵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 악질병은 사랑을 줄 수 있는 마음과 봉사할 손이 있지 않는 한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도의 데레사 修女는 말하고 있다.
사랑이다.
전화상담의 자세도 두 말 할 것 없는 사랑이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꼬13 2~3)
비록 쓸모가 없는 사람의 정도를 더 지나 해충과 같다고 느껴지는 이들도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파렴치한 여성편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면서 현재 동거하는 여성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한 청년의 전화를 받으면서 훈계 한마디 따끔하게 내리지 못한 답답한 추억도 있다.
미련한 한 주부의 달팽이속 같은 자신의 생활과 의식구조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일터에 나가는 남편의 행동을 믿지 못한 나머지 병에 걸려 있었던 웃어버리지 못할 상담도 있었다.
자신의 결벽증을 잘 알면서도 고치지 못해서 고민하는 젊은 여성의 눈물의 호소.
내가 받았던 수많은 사례들은 하나같이 다 절박하고 안타까운 내 살붙이의 호소였다.
근자에 와서 특히 청소년들의 전화가 증가하는 추세다.
1981년 7월 31일 이래 가정ㆍ부부 문제와 결혼문제 다음으로 많은 문제로 그 통계가 나와 있다. (생명의 전화 5주년 기록사)
청소년들은 고민이 많다. 이들은 학교생활에 대한 문제, 교우간의 문제, 선생님과의 문제, 가출 후의 문제, 이성간의 문제, 장래 문제 등 무궁무진하다.
입시경쟁으로 그들 중 목표달성을 향해 뛰는 것을 삶의 전부인 양 말하는 학생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그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을 저해하는 성충동과 이성문제도 심각했다.
그리고 통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도벽문제는 이성문제보다 오히려 그 비중이 심각함을 보고 있다.
「안 들키면 그냥 넘어가고 들키는 경우라도 장난으로 치는」급우간의 작은 도벽사건에서부터 슈퍼마켈이나 복잡한 시장을 상대로 하는 조직적인 사례도 있다.
우발적이건 계획적이건 이런 도벽의 시정은 그 자체의 죄의식 이전이 전체 사회(가정 학교 포함)의 올바른 가치관이 시급히 교정되는 분야로 보고 싶다.
필자가 가출한 청소년에게 꼭 들려주는 한 사례가 있는데 감명깊게 받은 한 아버지의 전화내용을 기억한다.
머리가 부실해서 특히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딸의 가출 얘기였다.
겨우겨우 고등학교 졸업반에 진급한 그 불쌍한 딸이 가출하자 이 아버지는 자신이 봉직하고 있는 직장에 휴직원을 내고 한 달 이상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딸아이에게는 다른 자식들보다 몇 갑절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왔는데 고등학생이 되자 어느날 이성을 교제하고 있었음을 알고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모자라는 내 딸에게 상처만 안겨주는 일이 될까봐 부모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뒤쫓아 다녀야 했다.
그런데 딸의 이성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았다. 이성 친구의 숫자가 많고 복잡했다.
머리를 깎고 감금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자 딸의 담임선생님과 의논하고 큰아들집에 보냈다.
서울 근교인 큰아들 내외는 성실한 젊은이들이었고 문제가 많은 이 누이동생을 잘 보살폈다. 딸도 조카들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딸이 가출했다. 조카의 첫돌을 맞아 손님들이 많이 왔던 날 축하선물로 들어온 금반지들과 돼지저금통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수십 개의 파출소, 고아원 심지어 싸구려 술집들, 직업소개소, 아버지는 식욕을 잃고 밤잠도 잊은 채 서울 근교를 헤맸다.
『이젠 지쳤습니다』
목쉰 아버지의 절규가 귀로 들리는게 아니고 내 가슴에 와서 쾅 부딪쳐 오는 것이었다.
『금반지를 팔려다가 도둑으로 몰리지나 않았는지, 나쁜 사람들이 몹쓸 곳에 팔아넘기지나 않았는지』
얼굴이 예쁘고 날씬해서 금방 눈에 띤다는 그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어둑한 그날의 상담실에서 나는 그 아버지와 똑같은 심정으로 기도했던 것이다.
이 얘기를 해주면서 필자는 집에서 부모님들이 얼마나 너희들을 찾고 기다리며 애를 태우는가를 말해주면
『정말 내가 집으로 다시 들어가면 엄마나 아빠가 용서할까요?』
『학교는 어찌 될까요?』
내가 내민 손끝을 꽉 잡는 그들의 체온을 가슴으로 받으며 상냥하고 다정한 그들의 목소리를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을 실감한다.
1962년 8월 호주「시드니」에서 시작된 생명의전화운동은 기독교적 사회봉사운동으로 세계에 퍼져서 오늘날 세계 14개 국에서 2백50여 센타가 일하고 있다.
미국이 1백5개 센터로 제일 많고 호주에 30개 센타, 카나다에 27개 센타 일본의 14개 센타 대만의 12개 센타의 순위이고 우리나라는 1978년에 개원한 부산까지 2개의 센타가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서구에는 특수 봉사자들이 있어서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서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먼저 전화를 걸고 안부와 대화를 나누는 전화방문 봉사가 있다.
어느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찾아가서 병에 걸렸는지도 확인하게 한다.
온전히 혼자 사는 노인이므로 또한 혼자 죽어가는 외로운 이들에겐 얼마나 필요한 상담원들인가 하는 걸 알 수 있다.
벙어리 귀머거리를 위한 텔레타이프를 이용한다든가 생명의 전화가 없는 지역의 시의전화자를 위한 무료전화설치 등 서구의 시설이 우리나라에도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확신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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