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하느님 나라를 받아 들이는 것은 사순절 동안 계속되는 주제들이다. 오늘은 특히 회개의 표시로서의 세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제1독서의 노아의 홍수와 홍수 후의 계약은 모두 세례와 관계되는 내용들이다. 홍수의 물은 곧 죄로 말미암은 파멸과 죽음의 상징인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주는 성세수의 상징이며 홍수 후의 계약은 세례자에게 보장된 새로운 삶의 예표이기도 하다. 세례는 오늘 제2독서의 말씀과 같이「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 지는 것」이다. 세례로서 맺은 계약은 올바른 양심으로 살겠다는 서약 정도가 아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 자신을 송두리째 예속 시킴이요, 저당 잡히는 행위이다. 즉 하느님께서 거의 일방적으로 사랑의 약속과 구원을 보장하시고 베푸신데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서의 예속이요 저당이다. 이것은 바로 사랑의 서약이다.
내 인생이 온전히 타의에 의해 시작되는 출생과도 같이 이제 나의 생명이 오로지 하느님의 손길에 의해 새롭게 시작되고 이끌려 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회개로써 하느님께로 방향전환 한다든가 하느님의 나라에 속하고 그 지배를 받는다든가 세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 등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요, 엄밀히 말해 서로 깊이 묶여져 있는 하나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 저변에는 서로가 항상 신비로운 계약의 끈으로 묶여 있다. 즉 그것들은 하느님의 무상의 구원과 사랑의 은총에 대한 사랑의 응답이란 것이다. 사랑이란 항상 서로를 종속시키는 강한 결속과 동시에 자유로움을 이루어주는 역설과 모순 같은 공존이 가능한 신비로운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자유로운 사랑의 계약이요, 오히려 하느님께 예속됨으로써 얻는 참 자유이기도 하다. 세례는 이와 같이 종속과 자유의 공존, 죽음과 생명의 공존을 신비롭게 이루는 놀라운 사건이다. 세례가 회개의 표시오, 하느님 나라의 입문 성사 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례자는 이제 자기 안에 죽고 그리스도안에 살며, 자기의 길을 버림으로써 참 자유의 길, 하느님의 길을 찾게 된다. 그것이 바로 회개의 길이다. 그러기에 회개란 감미로운 응답이요, 감사에 넘친 응답이요 사랑에 넘친 자유로운 응답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잘못 하면 세례를 죄의 때나 벗기는 마술적 효과를 지닌 기계로 착각 하거나 순수한 전통이나 읍관으로 받아 들이는, 그래서 그것을 받으면 막연 하나마 악마로부터 보호되는 주술적 의식 정도로 생각 할 수도 있다. 「빠리」근교의 한 본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젊은 사람이 와서 자기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겠다고 했다. 그가 평소에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한 나는 그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은 왜 아기에게 세례를 주려고 하는가?』그 사람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 그것은 우리 집안의 관읍이요』라고…물론 나로서는 그런 세례를 주고 싶지 않으니 본당 신부에게 상의 해보라고 단호히 거절 했지만…
하느님 나라에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 없이 회개하고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인다면 그 길은 그렇게 험하지만은 않으리라 본다.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우신 하느님의 은총과, 세례로서 사랑과 자유의 길을 밝혀주신 그 분께 감사 드리며 끊임없는 회개로 그 길에 충실 하고자 새로운 사랑의 약속을 다짐 해야 겠다. 그리고 언제나 겸허하게 그 분 앞에 엎드려 『주여 당신의 길을 내게 보여주시고 당신의 지름길을 가르쳐 주소서』(오늘 미사층 계송ㆍ시편24편4) 하고 간청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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