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 하려고 한 것입니다』(꼬린토전서 9ㆍ22)
사도 바오로는 비상한 그의 전교 활동에 있어 한 가지 처세술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 누구를 대하든지 그 사람처럼 되는 것 이었읍니다.
실상 그는 모든이들을 이해 하고자 했으며 그들 각자의 외식 구조 안으로 들어가려 노력 했고, 그리하여 유대인들과는 유대인이 되며 유대인이 아닌자들-즉,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율법을 지니고 있지 않는자들-과는 율법을 지니지 않는사람과 같이 되었읍니다.
그는 장벽을 없애거나 사람들을 화해 시키는데 유용한, 유대인들의 상례를 받아 들였으며, 그리이스 - 로마 지역에서 활동을 전개 하면서는 그 환경의 생활 형태와 유사한 문화 형태를 취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라고.
이들은 약한 믿음을 지닌 때문 이라든지, 또는 사물에 대한 지각이 부족한 고로 쉽사리 좋지 못한 표양을 보이는 크리스찬 들입니다. 그리하여 우상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에 대한 문제가 발생될 수 있었읍니다. 즉, 그것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 지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성바오로는 단 한 분의 하느님만이 계시며 우상신은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상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한정된 식의 판단과 불충분한 교육에 습관이 되어 있는「믿음이 약한자들」은 그와 반대로 생각하고, 혼동 된 상태로 남게 되는 수가 있었던 것 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의식구조를 가진 크리스찬들과 접하게 된 성바오로는 그들을 혼란 시키지 않도록 그러한 고기는 음식으로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이와같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그들 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바오로로 하여금 그 같은 행동을 취하도록 밀어 주는 가요?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져다 주는 자유의 커다란 지평선이 이사도 앞에서 부채처럼 펼쳐져 보여집니다. 즉 죄악으로부터의 자유ㆍ율법ㆍ죽음ㆍ사탄의 집권으로부터 또 국가 간에 놓여진 장벽들 계급ㆍ성(性)ㆍ모든 인간적 독재ㆍ음식이나 행동 거지에 대한 미신으로부터의 자유 등입니다.
성 바오로는 자기 자신 안에 이 자유들을 생활화 하며, 그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들에게도 복음으로써 이를 전달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발한 크리스찬 정신의 자유로운 현실 안에서, 그의 형제들이나, 각 이웃들, 곧 그 누군가의 종이 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명령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는 그의 이 불가피한 의무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하였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의 봉사자가 되기 위해, 또 자신이 처한 전 세계에 각 인간으로 하여금 도달케 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심으로써 모든 인간과 가까워 지셨읍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그 분은 우리 죄인들 각자 각자와 하나가 되셨읍니다. 우리들의 연약함, 고통, 번뇌, 무지, 버림 받음, 의문, 우리가 지닌 무거운 짐 등에 자신을 합치시키셨읍니다.
성 바오로 역시 이렇게 살기를 원하며,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확언합니다.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생활 말씀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요?
당신도 알고 있듯이, 당신의 인생과 그 나날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 도달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가 아니라 형제들과 함께 도달하는 것입니다. 실상 크리스찬인 당신에게도 성 바오로에게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하느님의 부르심이 내려졌읍니다. 당신 역시 이 사도처럼 누군가를「얻어야」하며, 어떤 값을 치루고라도 누군가를「누원해야」할 것입니다.
그 길은 무엇이겠읍이니까? 당신의 이웃들과「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 곁에는 나이 어린 형제들이나 성인(成人)형제들이 있을 것이며 무식한 형제나 박식한 형제, 또는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 남자나 여자, 동족인이나 타국인 등의 형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길에서 만나거나, 전화로 통화한다든지, 당신이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등, 하루 일과 중 당신 곁에 있게 되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 모든 이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는 가장 약한 자들을 택하도록 하십시오.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이 약한 자들, 냉담자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자들 무신론자라고 자처하는 이들, 종교를 훼손시키는 자들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들의「연약함」안에서까지 그들과 하나를 이룬다면 당신은 성바오로의 그 틀림없는 사도술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즉 당신은 그들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교회는 전혀 사랑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부인이 있읍니까. 당신이 할 수 있는대로, 할 수 있는 만큼 그녀가 TV 프로를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그녀의 동반자가 되어 주십시오. 당신은 기도하는 방식을 잃어 버릴 정도로 다른 모든 것에는 무관심하며 축구가 마치 그의 우상처럼 되어 버린 한 아들을 두고 있읍니까?
그 보다 더한 스포츠 애호가가 되십시오. 당신에게는 여행이나 독서 아니면 지식 쌓기를 좋아 하며 모든 종교적인 개념은 바람 결에 던져버린 친구가 있읍이니까?
그의 취향이나 그에게 요구되는 것 등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할 수 있다면 그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모든 이와 하나를, 하나를 이루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에 하나를, 하나를 이루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에 있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죄만을 제외하고 만일 그들이 죄를 범하거든 멀리 하십시오.
이웃과 하나를 이루는 것이 시간을 낭비 하는 것이아니라, 모두 얻게 되는 것임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엔 가는-그날은 멀지 않을 것인데-그들은 당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감사에 넘친 그들은 당신의 이러한 크리스찬적 태도의 원동력이었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분을 흠숭하며 사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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