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장 첫 머리에 나오는 「오늘」이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요한 낱말이다. 오늘은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던 날이며, 후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말씀을 봉독하는 날, 그리고 오늘 나에게 하느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이다.
그러면 오늘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오늘 신명기 8장에서(2-5절)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전에 광야생활에서 40년간이나 어려움을 당하게 하신 시험기간에 대하여 풀이를 주신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느님께 대한 불신 때문이었고, 둘째는 이집트에서 물들었던 이방인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죄악을 사랑했기 때문이고, 셋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라는 출애굽의 교훈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출애굽 16-18장과 비슷).
신명기 8장에서는 무엇보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을 잊지 말도록 신신당부 하신다. 옛날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은 꼬치꼬치 기억하면서 받은 은혜에 대하여는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욱 못된 것은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살려놓으면 감사는 커녕 오히려 내 돈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 세상에, 우리 주위에 허다하다. 자기를 낳아 주신 부모님까지 살해당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다른 말이 더 필요없다.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을 잊게 된다(11절).
그리고 재물이 많아지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기 쉬우므로 경계까지 하신다. : 『배불리 먹으며 좋은 집을 짓고 살게되고, 소떼 양떼가 불어나고 은과 금이 많아져서 너희 재산이 늘어나더라도 … 야훼를 잊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12-14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던가?
광야에서 야훼쎄거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 산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함이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살 수 있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정녕코 망할 것이라는 것을 거듭 들려주고 있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우리 주위에는 불행하게도 집안 내 우환이나 무슨 사고가 생기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냉담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는 커녕 자기의 말을 하느님께서 듣고 따르도록 요구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우상 숭배인 것이다.
신명기 9장의 첫마디도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된다. 『너희는 고집이 센 백성이다. 너희가 광야에서 얼마나 너희 하느님 야훼의 속을 썩여드렸던가. 명심하고 잊지 말아라』(9, 6-7). 모세는 식음을 전폐하고 야훼 앞에서 40일간 백성들을 위해 엎드려 기도 드렸다고 말하고 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야훼 하느님께서는 거역하기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없애시지 않으시고 살려주셨다는 것도 기억하여 준다.
나도 한때는 참으로 고집이 세었다. 어렸을 적에 우리 가족가운데서 고집쟁이로 별명까지 있었으니까. 절대로 남에게 지지 않으려 했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였다. 내가 수녀가 된 것도 아무도 꺾지 못했던 나의 그 고집 때문이기도 하다. 고집 때문에 집안식구들 속상하게 해드린 적도 더러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을 보고 속상해 하셨던 하느님의 마음을 뒤늦게야 알 것 같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고집쟁이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이스라엘에서공부할 때 사해 건너편에 까마득히 보이는 느보산을 바라보며 언제 저곳을 가볼 수 있을까 하고 바라던 것까지 하느님께서는 다 들어주셨다. 10여년전만 하여도 이스라엘에서 신명기의 길을 현지(오늘날 이곳은 요르단 왕국이 들어있다) 답사한다는 것은 마치 서울에서 평양가는 것 이상으로 어려웠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우리 학생들은 바티칸의 여권을 발급받아 마치 서울에서 판문점을 거쳐 이북으로 들어가듯이 이스라엘에서 요르단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느보산에서 한 주간을 숙식하면서 구약의 모압땅을 비롯하여 신약의 데카폴리스 지방도 두루 다닐 수 있게 해주셨다.
신명기의 길을 생각하면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때 독감에 걸려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지도교수님의 뒤를 따라 모압 벌판을 헤매었던 체험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생하며 유혹을 당하던 것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까지 하루도 잊지 않고 그때의 은혜를 감사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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