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 시기 - 사순절을 맞아 서울대교구는 지난 2월 26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대주제로 사순절 특별 강론을 시작했다. 본보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묵상하는 이 시기에 회개와 쇄신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사순절 특별 강론을 매 회에 걸쳐 소개하고지 한다. 다음 글은 27일 「십자가의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첫 강론을 맡은 경갑룡 주교의 강론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오늘 살펴 볼 십자가의 현대적 의미는 신학적 성서적 의미나 빠스카의 신비, 십자가의 신비로서의 의미 보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바라 보고 우리 앞에 보여질 십자가 즉 사회구원 도구로서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우선 3년전 교황의 조국 방문 때 「바르샤바」광장의 대형 십자가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예로 들어본다. 이것은 여의도 광장에 나타난 기적의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의 기적 이야기이다. 60년 4월 27일 폴란드의 산업 도시「노아후타」에서는 2일 간 폭동 아닌 폭동이 발생했다. 이 폭동은 현재의 폴란드 사태와 같이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아니라 벌판에 세워진 26피트의 십자가를 보호하려는 노동자들과 학교 설립을 이유로 그 땅을 빼앗으려는 공산 당국과의 충돌이었다.
노동자들은 미래 교회가 설 자리, 희망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악탈한 공산 정권과 대항하여 십자가를 에워싸고 평화의 항쟁을 벌였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노동자들은 금전적으로나 당국의 직접ㆍ간접 방해 공작으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77년 5월 15일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 신앙으로 5천명을 수용 할 수 있는 규모의 성당을 완공 축성했다.
이 축성식에 참석한 당시 「크라코프」교구 카톨 보이티야 추기경(現 교황)은 축사에서 『인간과 그의 삶의 역사는 경제적 언어로 계속 될 수 없다. 인간은 그 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이 이야기는 폴란드 노동자들 가운데 오늘도 역사 하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 능력에 응답한 20세기의 신앙 사건이었으며 억압과 학대 속에 고통 받는 모든이에게 십자가의 생명력을 보여준 20세기의 산 증언이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은 단순한 결과론보다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고 있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즉 경제적 언어로 표기되는 물질ㆍ안락ㆍ부귀영화ㆍ명예ㆍ권력, 이상의 것이 우리 앞에 실존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교황께서는 최근 발표한 「인간의 구원자」와 「자비로운 하느님」등 2가지 칙서에서 현 세대는 세번째 천년대가 다가오는 시대에, 역사 변화를 심각 하게 느끼는 세대라고 전제하고 세상 사람들은 심각한 불균형과 불안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 하셨다. 교황께서는 또한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끝난 15년후 인 오늘 우리시대를 특징 짓고 있는 불안과 긴장을 교회는 조금이라도 감소시켰는지 물으셨다.
오늘의 불안과 위험은 세상과 인간의 존재 의미와 결부되어 있으며 인간과 모든 인류의 장래에 대한 불안은 지금의 인류에게 해결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절박한 물음에 대해 교회가 말하고 보여줘야 하는 희망의 언어는 무엇인가 라는 심각한 물음이 우리 앞에 놓여진다.
이와 같이 날로 증대되어 가는 긴장과 위협을 종식시키는 마지막 구원의 카드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누차 내세우신 「사랑의 문명」이라고 생각 된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의 노력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제시한 이 말씀은 오늘날 세계의 구원 도구로서의 십자가를 다시 발견하라는 것이다.
기복 신앙에 빠져 개인의 안락과 육체적 구원만을 신앙 척도로 삼고 있는 그리스찬에게 십자가는 옛날처럼 걸림돌이나 어리석음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분명히 하느님 구원계획의 도구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는 물질 만능의 현세에서 십자가에 처형된 자를 생각하는 것이 넌센스에 속할지라도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는 이 험난하고 위급한 2천년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며 동시에 인간의 무력함과 비참함을 보여주는 십자가에 눈을 돌리것을 호소한다.
오늘 날 다시 찾아야 할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처절하고도 감동적인 말씀인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읍니다』라는 기도에 집약 될 수 있다.
첫번째 용서를 청하는 말씀에서 언행을 일치하는 놀라운 힘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큰 비극 중 하나는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인류 사회는 복수 때문에 거칠어 졌고 보복의 역사를 계속해 나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고 모든 인간을 받아주시기로 한 약속이 확인되고 있다. 선만이 악을, 사랑만이 증오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십자가는 오늘도 날카롭게 상기시켜 준다.
두번째 말씀은 인간의 맹목성, 하느님의 이과 인간의 일, 하느님의 지혜와 인간의 얄팍한 지혜를 혼돈하는데에서 인간이 구원될 때 이 세상은 구원 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는 악인이 아니었다. 인간의 무지가 마침내 하느님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인간의 무지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의 무지를 정복한 산 증거이다.
빛은 이미 세상에 왔다. 십자가가 오늘 세상을 비치는 빛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의도 광장에 나타난 십자가는 바로 십자가가 빛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 된다. 사도 신경을 통한 우리의 신앙 고백은 오늘도 세상을 구원하는 삶의 도구가 무엇 인가에 대한 해답으로, 십자가를 어리석음으로 보고 버릴 것 인지 하느님의 지혜 힘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결단하는 물음이기도 하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위해함, 무한하심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인간의 무력함ㆍ맹목성과 죄악을 생각케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을 정복한 빛의 하느님으로서 십자가를 우러러 보며 경제 정치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십자가의 언어 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음을 보여 줘야 하겠다.
그리고 꼬린토 전서 1장 18절에서 25절까지에 나타난 사도 바오로의 십자가에 대한 신앙 핵심을 우리 모두의 핵심으로 삼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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