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는「산업사회」또는「교환 경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 시대의 특징적인 사고 방식에 깊이 젖어 있다. 우리는 시장에서 만원을 주면 그에 해당되는 만큼의 물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내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또는 보상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억울하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생각은 교환 경제 사회의 산물이라고 본다.
다정했던 이웃집 사이에 언제부터 그렇듯 처절한 이해타산적 아귀 다툼이 일기 시작했던 것일까? 술을 담그거나 떡을 하면 으례 여유있게 장만하여 이웃집과 아낌 없이 나눠 먹던 후한 인심들이 어느때부터인가 사라지고 그렇듯 몰인정하고 각박한 산술적 삶의 논리에 빠져 들었단 말인가? 모든 것을 계획과 실리적 타산에 맞추려 들고 사랑까지도 주고 받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계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했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까지도 그렇게 계획하고 계산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또 자신을 발전 시키고 완성 시키는 것도 마치 물질적 자료를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 내듯이 자기의 노력과 방법에 따라 자기를 이상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노력하고 애써서 그 노력한 만큼의 발전이 없으면 실망하고, 또는 그 만큼의 댓가가 없으면 원망 한다.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것이 어찌 당연한 요구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위의 논리가 전개되면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를 자기 힘으로 수립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페라키아니즘」의 이 단에 빠질 위험성이 다 분하다. 그것은 이미 교회 사상 그릇된 것으로 단정 되었다.
믿음과 사랑의 세계는 양적인 교환의 원칙에 매여있지 않다. 전적인 믿음과 사랑에는 어떤 조건이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믿음이나 사랑에는 항상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의 사랑은 계산을 초월한 비조건적 사랑이다. 그 분의 엄청난 사랑과 은총에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 오늘 미사 복음에서는「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내용이 되풀이 되어 강조되고 있고「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죄인으로 판결 받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요한3ㆍ14~18)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도 말씀 하신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입고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 구원 이야 말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에페 2장 8)
우리는 우리가 노력할 때 대개 그만큼의 결과를 바란다. 선행을 할 때는 그 만큼의 기쁨과 보상을 바라고 기도한 만큼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덜 받아서, 또는 은총이 부족해서 무엇이 제대로 안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은 넉넉히 주어졌다.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꼬후ㆍ12장 9)
불행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믿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믿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사랑과 은총의 거절이다. 그래서『하느님께서 인간을 단죄하기보다 먼저 인간이 스스로를 단죄한다』는 말도 나오는가 보다. 그 분의 사랑을 믿을 때 이미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 졌다. 하느님의 은총을 빌기 이전에 넉넉히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거절하지 않도록 해야 겠고, 풍성히 내리시는 그 분의 사랑과 은총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 성자를 보내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오늘 미사 복음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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