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게될 것 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요한 12ㆍ 26)
예수께서는 이미 알려진 한 가지 비유를 하심으로써-당신은 이를 기억하는지요?-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즉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되듯이 그 분께 있어서도 이와 같을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것이며 이를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이렇게 덧 붙이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그 분과 같은 길을 따르면서 그 분을 섬기고자 하는 자를 초대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누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이는 분명하니 어떤 특정한 영역에 속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모든이에게 향한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모든 신자들을 향한 것이니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아주 직접적인 것입니다. 그 분의 운명은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며 이는 곧 그 분 제자들의 운명 이었고 또 나의 운명, 당신의 운명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 길을 따라 걸을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충만히 실현하게 되며 각자에게 주어진 성소를 성취 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나를 섬기는 사람』. 예수께서 사용하신 「섬기는 사람」이라는 이 말은, 모든 크리스찬들의 사명, 즉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파견자로서 그의 협조자, 그의 관리자가 되어야 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크리스찬은 예수께서 걸으신 그 똑 같은 길위에 서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사랑의 길인 것입니다. 이는 어느 날 그 분이 했던 것처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에게 생명까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물론 매일 자기 자신을 죽일 것을 청하십니다. 실상,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거나 죽이지 않고서는 다른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대 교인들의 생활 방식으로, 그들은 이렇게 죽음과 부활의 참된 의미를 살므로써 사랑을 실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섬기는 자들, 즉 그 분의 제자들임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물론 당신 귀에 익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서로 사랑 한다면, 이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이 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 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따른다면, 우리들의 길에 있어 피어날 꽃봉오리는 그 분의 것이 될 것이니, 예수께서 차지하신 천국과 성부의 영예는, 우리에게 있어 그 분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영광에 참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작별 인사로 하신 말씀과 비슷한 약속으로, 예수께서는 그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며, 그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생활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의 이 약속은 너무 나도 큰 것이며 그 미래는 빛나고 광대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지적해 주신 그 길을 따라 걸어 나가 는데 있어 한 순간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 일과 중 만나게 되는 모든 형제들 앞에서 그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된 마음 자세를 갖도록 합시다. 그러면 모든 희생은 자연적으로 될 것이며 우리 자신과 우리들의 이기심은 저절로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분과의 공동목적지이며 우리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하늘을 예상하면서, 그 분을 섬기는 자, 그분의 제자로서 살게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중 2명 이상이 이렇게 처신한다면 사람은 서로 간에 이루어질 것이며, 상상 의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지내시기 위해 저 세상의 삶을 기다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분은 이제로부터 우리 가운데 계실 것이니, 『단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여있는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 땅 위에서부터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이 거대한 보상을 눈 앞에 두고 어찌 이를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용기를 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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