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주변 일대의 순례를 마친 한국 순례단 일행은 7월 24일 「엠마우스」를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 「나자렛」으로 향했다.
소나무와 향나무가 울창한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인구 4만 5천명의 「나자렛」은 히브리어로 「꽃」이란 뜻을 지닌 마을답게 가로수와 수목이 우거진 전형적인 전원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변 산지의 흔한 석재(石材)를 사용한 석조 건물들이 질서 있게 늘어선 거리에는 다른 유적지에 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었다.
시가지 한복판 구릉 위에는 예수께서 이런 시절을 보내신 성 가정의 보금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는 왕관 모양의 「돔」이 인상적인 성모 영보 대성당이 온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우뚝 솟아있다. 각종 잡화와 기념품상이 어지럽게 늘어진 좁은 언덕길을 지나 돌로 바닥을 깐 성당 뜰에 들어서니 각국어로 쓰여진 기도문이 7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질서 있게 늘어서 있다. 그 가운데서 「평화의 모후여 하례하나이다」라고 쓰인 한글 기도문이 낯선 순례객을 반겨 준다. 순간 메시아의 고향이 곧 우리 모두의 고향과도 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한글 기도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순례단은 묵상을 끝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2개의 큰 돌기둥이 천정을 받쳐 주고 있어 더 한층 장엄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성당 안 바닥은 곱게 손질한 대리석을 깔았고 벽에는 각처 교회에서 기증한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돼 있다.
성 요셉 일가가 살았던 곳은 바로 이 성당 옆에 있는데 그 위에는 성요셉 성당이 들어서 있고 작은 구멍을 통해 지하의 성가정 유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온 인류가 애타게 기다리던 메시아는 바로 이 곳에서 목수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인류 구원의 큰 꿈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정의 위기, 그리고 그 가운데서 성가정이 주는 의미등을 생각하며 순례단은 예수께서 그의 첫 기적을 보여주신 「가나」로 향했다.
이스라엘의 지붕 골란 고원이 가까와 질수록 산세는 점점 험해진다. 일행이 탄 작은 버스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땅을 뚫고 이어지는 아스팔트 산길을 따라 곡예를 부린다. 「나자렛」을 지나 북동쪽으로 14㎞거리를 숨 가쁘게 달린 끝에 한적한 작은 마을로 접어 들었다. 따갑게 내려 쬐는 불볕 탓인지 거리엔 행인의 발 길마저 뜸하다.
좁은 골목 입구에서 차를 내린 일행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그의 첫 기적을 보여주심으로써 구세주의 권능을 만방에 보이고 파란만장한 공생활(公生活)의 첫 발을 딛게된 「가나」의 혼인잔치 기념 성당은 이 처럼 골목 깊숙이 숨어 있었다.
마치 가정집 정원처럼 꾸며진 작을 뜰을 지나 좌우에 두 줄로 놓인 돌 계단을 따라 성당안으로 들어 갔다.
여느 다른 기념 성당과 달리 순례자들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성당 정면의 제단 만이 외로이 낯선 이방인을 맞아 준다.
별 다른 장식 이라고는 없는 조그마한 성당 지하에는 「가나」 혼인 잔치 때 쓰여진 것과 같은 커다란 돌항아리가 안치 돼 있다.
항아리에 가득 담긴 물을 순식간에 맛좋은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구세주의 기적 앞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고 마침내 메시아의 영광과 권능 앞에 무릎을 꿇었던 제자들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
성당안을 둘러보고 나오니 들어갈 때엔 보이지 않던 프란치스꼬회 신부가 조그마한 안내장을 나누어 준다.
성당 마당 구석 등나무 그늘에는 기념품 상회 주인 노인이 열심히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옆에는 사납게 생긴 개가 낯선 이방인을 본채도 않고 졸고있다.
노인을 불러 포도주를 한병 샀다. 기적의 장소에서 기적의 술을 생각하며 포도주를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러나 술맛이 싱겁기 짝이 없다. 거기다 이상한 냄새가 비위를 틀리게 한다. 인간의 얄팍한 재주로서는 감히 주님의 능력을 흉내도 낼수 없음을 깨우쳐라도 주려는 것인가-.
버스에까지 따라 오며 차창 안으로 석류를 사라고 내미는 어린 유태 소년의 우수에 깃든 눈망울을 뒤로 하고 일행은 「갈릴리」로 향해 갈길을 재촉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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