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처한 전 세계의 사정, 특히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볼 때 빠스카의 신비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적어도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이 빠스카의 신비는 단순한 예배나 부활절 미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계속 연장되어 죽을 때까지 꽃 피워 열매 맺으며 타인과 사회, 온 인류에게까지 연결 되어야 할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순절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어느 시기 보다 더 큰 열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는 시기하고 한다. 가톨릭 교회의 많은 축일들 가운데 1년 동안의 신앙 생활을 받쳐주는 두 기둥과 같은 성탄절과 부활절에 각각 4주간과 40일씩 갖게 되는 준비 기간의 의미를 볼 때 더욱 뜻깊은 것이다. 극기와 보속으로 재를 지키며 영세의 의미를 재음미 해보는 이 시기는 빠스카 축제를 성대하게 지내고 빠스카의 신비를 또다시 재현 시키기 위한 것이다.
빠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40이란 숫자는 구약과 신약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하느님께 도전하고 원망 하여 하느님의 위안을 받았던 민족 역사의 기간이었으며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 하시기 전 40일 간의 단식 기간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적인 것을 보여 준다. 주일 미사 때 마다 외우는 사도 신경의 중요한 부분은 천주 성삼 제 2위이신 성자 그리스도께 관한 신비를 고백 하는 것이다. 부활에 대해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교 만큼 분명하게 가르쳐 준 종교는 없다.
그리고 산이와 죽은이를 심판하러 오시리 라는 믿음 또한 부활 믿음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도 행전 13장 32절에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당신들이 박해 하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어 다시 썩지 않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한편 이사야서 52장 13절 이하에서 야훼의 종의 넷째 노래에 나타난 야훼의 종은 예수그리스도 자신 이셨다. 많은 사람들이 궁궐에서, 총칼 밑에서, 돈 더미 아래에서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렸지만 예수 탄생 1세기 남짓하기 전에 이 예언자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리고 이 빠스카의 신비,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역사 속에 활동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절정에 이른 것이다. 빠스카의 신비는 우리의 역사와 동 떨어진 플라톤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이루어진다는 사건 하나만으로도 예수께서는 우리의 생활 깊숙이 역사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수께서는 형제들안에 살아계시고 부활 하신다. 그러므로 진정한 크리스찬은 예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 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를 갈망하고 진리를 갈망하며 사랑에 목 말라하는 갈망의 눈초리들을 보고 있다. 이 갈망 자체가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제 자매 안에서 현존 하시는 예수께 대해 예배를 드릴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갑작스럽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셨고(마르꼬 5ㆍ21이하) 나인에서 과부의 외아들(루까7ㆍ11이하)을 살리셨 을 뿐만 아니라 라자로를 살아나게 하시는 등 (요한 11장) 미리 능력을 갖고 계심을 보여 주셨다. 또한 마태오 12장 40절과 요한 2장 19절 등에서 죽음과 3일 만의 부활을 예고 하였고 특히 마르꼬 복음에서는 8장 31절, 9장 31절, 10장 34절 등 경우가 다른 곳에서서 3번씩 죽음을 예언 하고 있다.
한편 요한 20장에서는 빈 무덤에 관한 광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빈 무덤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예수 부활의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믿음이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 예수의 부활에 동참 하려는 사람은 예수의 고통에 동참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사순절 동안 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과 부활의 길을 증거하는 일상 생활이 되어야 하겠다. 그러므로 때로는 조롱 거리가 되고 자신을 끊어 버리고 봉사 하며, 이기주의에서 해방 되어 다른 이를 위해 죽을 줄 아는 삶을 일생 동안 살아 나가도록 해야 겠다. 사도 바오로도 갈라디아서 2장 19ㆍ20절에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