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 붙은 대지 밑에 숨어 있다가 새 봄과 함께 움터 나오는 자연의 생명력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의 온갖 미움과 음모, 이기심과 명예욕, 좌절과 절망의 소용돌이에 짓 놀리고, 수난하다가 이 모든 어둠을 물리치고 부활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새로운 생명은 더욱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의 도우심으로 온갖 갈등과 고뇌에서 해방되는 기쁨과 평화를 맛보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사도들을 만나실 때 마다『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읍니다. 이 평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수확하신 가장 풍성한 열매였읍니다. 그리스도는 이 평화를 얻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가셨읍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속의 평화와 달리 깨어지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읍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분쟁이 없는 침묵이나 폭풍 전야의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전 존재 자체가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는 과연 어떻게 하여 당신 전체가 평화가 되실 수 있었겠읍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동족의 증오와 시기와 오해를 한 몸에 받으시고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으면 안되셨읍니다
당신은 오로지 인간을 철저히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시간과 정력을 다 소모하였지만 아무도 이를 깊이 이해하거나 지지하지 않고 모두가 삐뚤어진 눈으로 바라보고 박해하였읍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삐뚤어지고 완고한 백성의 종이 될 것을 명하셨읍니다. 올바르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사악하고 편협한이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기를 원하셨읍니다. 하느님의 명은 참으로 알아듣기 힘들고 받아 들이기에 고통스러운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에 순명하셨읍니다.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ㆍ치욕ㆍ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순명하셨읍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신 잔은 너무나도 쓰디 쓴 것이었지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드셨읍니다. 그럼으로써「나자렛」의 예수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오로지 아버지의 뜻 만이 빛나게 되었읍니다.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그리스도는 사랑의 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 사랑의 불은 창조하는 불입니다. 이 불은 싸늘한 곳에 따뜻함을, 더러운 곳에 깨끗함을, 굳어져 있는 곳에 유연함을 창조하는 평화의 불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는 이렇게 활동하며 역사하는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그 분은 지금도 우리 모두가 이 평화를 맛보고 소유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형제 여러분, 이 창조하는 평화를 소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읍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가신 길을 뒤따르는 방법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신 길이란 아버지께 대한 순명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순명하기 위하여 항상 간단없이 아버지의 뜻을 찾고 따르셨읍니다.
이 아버지의 뜻은 문자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문자로 쓰여진 그 자체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은 말씀으로 항상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 순간 새로운 양상을 띠고 새 역사를 호흡하며 변화 성장 하듯이 아버지의 뜻과 말씀도 그때그때 새로운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형제 여러분, 오늘 1982년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겠읍니까? 우리는 과연 아버지의 말씀을 알고 있읍니까? 우리 개인, 우리가 속하는 공동체, 본당, 교구, 사회에 아버지는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싶어 하시겠읍니까? 우리는 혹시 죽어있는 문자를 바라다 보며 해석하는 것에 만족하고 지금 살아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뜻은 미처 들을 생각도 아니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최근에 와서 교회는 외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해왔읍니다. 신도수의 증가, 본당의 신설 등으로 교회는 해마다 눈에 띠게 급속히 팽창해 가고 있읍니다. 이는 우리 민족 전체가 느끼는 영적 갈증을 대변하는 현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총이 아닐 수 없읍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힘을 합하여 자기가 속하는 크고 작은 공동체, 본당교구를 훌륭하게 성장시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헌신적 희생을 모아 성전을 건립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일, 신도들의 유대와 친묵을 강화하기 위하여 다채로운 행사를 갖는 일, 모두 필요하고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찬들이 이러한 일만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영유해 나가고 이러한 일로서만 그쳐 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아버지의 뜻을 순간 순간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가 이런 정도의 일은 다 해왔읍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으로 신앙 생활의 전부를 삼는다면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고 그 말씀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문자를 읽어 가는것에 지나지 않읍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태초로 부터 온 인류를 당신의 영복에 동참하는 자녀로 초대하시고 지금도 그러하십니다. 세상은 하느님을 거부하고 받아 들이지 않아도 하느님은 단 한시도 세상을 버리지 않으시고 세상 안에서 활동 하시며 이를 모두 구원하시고자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격리되어 의인들의 아름답고 아늑한 공동체 형성에만 주력한다면 우리는 이미 순간 순간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의 하느님은 세상을 항상 사랑하셨고 한 시도 쉬지않고 이 세상을 위해 일해 오셨읍니다. 또 예수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 속에 뛰어 드시고 특히 가장 그늘진 곳까지 찾아다니며 활동하셨읍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순명한다면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스스로를 치유하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개인ㆍ단체ㆍ수도회ㆍ본당ㆍ교구가 각자의 차원에서 세상을 향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 나가서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하겠읍니다.
그럴때에 비로소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에 동참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온 누리를 새롭게 창조하는 평화의 불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가득히 누리시기를 빕니다.
1982년 4월 11일 부활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추기경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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