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물은 당신이 교회를 거룩히 하기 위해 교회를 사랑 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에페5ㆍ25ㆍ26)그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읍니다.
당신을 결정적으로 바치신 구원적 사랑을 통해 당신은 교회가「아버지의 집」(요한14ㆍ2)에서 영원한「어린 양의 혼인날」(묵19ㆍ7)을 준비하기 위해 교회를 당신의 신부로 삼으시어 교회가 이 지상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구원자이신 당신의 이 배우자로서의 사랑과 또한 신랑으로서 당신의 이 구체적인 사랑은 성령께서 「교회에 준비 하시고 이끄시는」(루멘 젠씨움4) 모든「교계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선물」들을 풍성하게 만드십니다.
주여 저희가 당신의 이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교회 창설자께 대한 생활한 믿음으로 인도를 받고 있는 사랑이 교회 모든 영적 활력의 은혜를 입고 있는 이 사람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당신은 당신 교회에 참된「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I꼬4ㆍ1)이나 특히 참된 성체 성사 집행자들을 보내실 수 있으시며 또 보내실 것임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또한 당신은 교회의 전통 속에서 행사되고 전해져 오고 있는 사제직의 카리스마를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불타오르게 하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실 것임을 의심 할 수 있겠읍니까?
그들 마음 속에 당신은 사제직에 대한 원의 뿐만 아니라 하느님 왕국을 위해 독신제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실 수 있으시며 또 하실 것임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독신제는 과거 뿐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가톨릭 교회 전체 사제들의 세대가 증거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와 최근의 주교 시노드의 외견과 반대로, 교회가 이 전통과 유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겠읍니까? 오히려 이 이상을 전파 하려는 우리의 행동과 증거에 힘입어 또한 관용과 기쁨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들 사제의 의무가 아니겠읍니까?
또한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여 성소를 다시 일깨우고, 딴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신학교의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할 미래의 사제수를 증가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아니 겠읍니까?
신학교는 성직 사제직에 불릴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 자신의 전체적 선물을 합당하게 준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성 목요일 묵상에서 저는 저의 형제들에게 이처럼 광범위한 문제를 제기하는 가입니다. 그것은 이 거룩한 날이 제게 영원한 사제이시며 우리 영혼의 착한 목자이신「당신 앞에 완전하고 절대적인 성실」을 요구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렇읍니다. 공의회 이후 즉 공의회의 모든 의심 할 수 없는 유익한 영향의 부 (高)나 교회 모든 영역에서의 영적 쇄신을 위한 교훈 적인 결실이나 풍부한 이니쉬어티브들에도 불구, 위기가 발생하고 적지 않은 불화가 나타나고 있음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읍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가 당신의 사람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버린(에페5ㆍ25)그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이 사랑과 진리의 성령의 힘이 어떠한 인간적 약함보다 때로는 이 약함이 우리 세해 보이고 또 「발전」의 표칭으로 간주되는 때라하더라도 더욱 위대하지 않겠읍니까?
당신이 교회에 주시는 사랑은 항상 나약하고 또 그 나약함의 결과들에 드러 내놓인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당신은 결코 이 사랑을 포기 하지 않으시고」교회와 인간을 불러세우시어 이들 모두에게 엄밀한 요구를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박말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이 사랑이 요구하는 것을 부인할 때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러므로 추수 주인에게 추수할 사람들을 보내 주도록 기도 하시오』(마태9ㆍ38)
우리들 각자 사제직의 새 일인 성 목요일에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이 사랑의 모든 광대함을 깨닫읍니다. 이 사랑은 빠스카의 신비 속에서는 당신을「죽기까지 순종하도록」요구했으며 또한 여기서 저희들은 저희들 자신의 하찮음을 더욱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읍니다.
오늘 저희는 그러는 때보다 더욱 『주여, 저는 쓸모 없는 존재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려야 겠다고 느낍니다. 참으로『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에 지나지 않읍니다』(루까17ㆍ10)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보잘것 없음」이 우리를「크나큰 희망의 사람들」이 되게 함을 확인합시다.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5ㆍ5)
이 선물이야 말로 당신 사랑의 결실이며 또한 갈바리아와 다락방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신앙과 희망과 사랑은 우리의 판단과 이니쉬어티브의 특별한 표준이 돼야할 것입니다.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인 오늘 저희는 최대한의 겸손과 또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성을 다바쳐 세계적 역에서 성체성사를 집전토록 불림을 받은 집전자들이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이 거룩한 희생과 영적 음식을 봉헌하지 않는 당신 제자들의 집단이 없게 해주시고 또한 고백자들이 부족하지 않도록 간청하나이다.
성체성사는 맨 먼저 첫 번째로 교회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것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선물입니다. 사제직 역시 성체 성사를 위해 교회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늘 공동체가 성체 성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특별히 당신께서 제자들에게『기도하라…추수 주인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도록 기도하라』(마태9ㆍ38)고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 하지 않는다면, 또한 주께서 공동체들에 성체 성사를 거행할 훌륭한 사목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지성으로 노력 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은 내적 확신을 가지고『공동체가 성체성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만일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선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은 마치 선물이 아닌 것 처럼은 취급 될 수 없읍니다
곧 그 선물을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릎을 끊고 그 선물을 간청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가장큰 선물이기에 우리는 사제들도 간청해야 할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제직 역시 교회에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 목요일 우리들 사제 모임에 주교들과 함께 모여 주여 당신께 구하오니 저희가 당신 살과 피의 성사인 그 선물의 위대함을 항상 강하게 깨 달을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또한 이 선물을 관리하는 법과 은총의 섭리와의 내적 일치 안에서 저희가 끊임 없이『추수 주인에게 기도』할수 있게 허락해주시며 또한 저희의 기도가 참된 제자들로서 성실함과 소박함을 지닌 깨끗한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게 해주소서. 그러하오면 주여, 당신께서는 저희의 청원을 결코 뿌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강력한 요구와 크나 큰 동기에 따라 요구 되는 큰 소리로 당신께 탄원드려야 하겠읍니다. 그렇게 우리의 애원하는 기도를 바칩시다.
우리는『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로마8ㆍ26)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힘이 크게 못 미치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그 문제보다 우리들에게 더 큰 다른 문제는 없읍니다.
성 목요일은 우리의 축제일입니다. 우리는 또 『곡식이 이미 다익어서 추수할 수 있게 된』(요한 4ㆍ35) 밭들도 생각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성령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조차 모르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며 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간구해 주신다』(로마 8 . 26)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교회를 젊게 하시고 항상 새롭게 하시며 교회를 그 신랑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인도하시는 분』(루멘젠씨움 4)은 항상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 어머님께서는 성 목요일에 다락방에 계셨다고 듣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히 당신 어머님의 중재를 통해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그 분에게 자기 아들의 살과 피보다 더 사랑스운게 있을 수 있겠읍니까? 그 살과 피는 성체성사의 신비 속에서 사도들에게 말겨 졌으며 그 살과 피는 우리들 사제의 손을 통해 끊임없이『이 세상이 생명을 얻기 위한』(요한 6 . 51)희생으로 봉헌되고 있읍니다.
그래서 그 분을 통해 특히 오늘 우리는 당신께 감사 드리며 그 분을 통해 우리의 사제직이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또한 그 사제직이 우리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겸손 되고 견고한 확신으로 울려 퍼지며 아울러 성무에 대한 열의가 증진될 수 있도록 간청 드리나이다.
오, 갈바리아와 다락방의 예수님, 우리 주님의 해 1982년 사제들 우리 모두를 받아 주시고 성목요일의 신비로 우리를 새로이 거룩하게 해주소서. 아멘.
1982년 3월 25일 성모 영보대축일「바티깐」에서 교황 재위 제 4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