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토마를 흔히 「믿지 못하는 사람의 전형」으로 생각하기 쉽다。그것은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뵙고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했을 인정 하지 않고 『나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 하겠소』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뒤에 그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는 유명한 신앙 고백을 남겼다。다른 제자들이 발현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잘못 알아 봤고 「기뻐 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 둥절해 있었고」(루까 24장 40) 또 갈릴레아에서는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절하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마태 · 28장 17) 비하여 토마의 단호한 신앙 고백은 우리들 신앙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사도 토마가 고백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곧 「예수가 주님이 심을 고백 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핵심이다。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신다。『예수는 주님 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랑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 10장 9) 예수가 주님이심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분의 절대적 주권, 지배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신뢰심을 갖고 맡김을 뜻한다。
주(主)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나의 주님)라고 하며 종이 주인 앞에 나아가 부르는 표현이다。우리가 하느님께 이 표현을 쓸때 우리는 그 분이 생사의 대권을 가진 분이시며 만사를 좋게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분의 주권은 현재와 미래, 이 세상을, 그리고 전 인류를, 또 구체적인 나를 그분의 능력이 지배하시고 다스리심을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성궤나 구름, 장막 등이 하느님 현존의 표시였다。그래서 거기에 가까이 가서 하느님을 인지(認知)하고 도움을 받았다。신앙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믿음으로써 그 분의 현존은 육체적 감각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받아 들이게 된다。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던 제자들이나 그 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심스러워 하는 우리의 태도에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 하셨음을, 또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 부활하신 예수를 우리는 이 땅에 올바르게 보여주고 있는가?
많은 신자들에게 물어보자。『당신 믿음의 핵심은 무엇인가?』어떤 대답이나 올까?
우리의 신앙은 오랜 세월동안 철학과 신학, 거기에 도덕과 신비주의가 뒤섞여 복잡하고 모호한 내용을 이룬 때도 있었고, 제도와 의식 등의 비대로 더욱 겉도는 형식주의가 된 때도 있었다。이번 공의회가 이 껍질벗기는 작업에 많은 공헌을 했고 특히 교회 헌장이 그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신에게 물어 보자。「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그 분이 나와 함께 살아 계시고 나의 힘이 되시고, 사랑이 되시며, 그 분을 좋으신 분으로 느끼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 가는가?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오늘 미사층 계송 후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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