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이태리「알비」(Albi)라는 마을에 집단적으로 살고있는 코레아氏들이 안토니오 · 코레아라는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80년 한국일보 駐拂 특파원 金聖佑씨에 의해 밝혀져 사학계와 가톨릭 교회사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발행된 「구주(歐洲)신문」(유럽지역 교포신문·발행인·南쟁호)은 알비마을의 코레아氏들은 어느 특정인에 의해 創氏된 성氏가 아니고 15세기부터 내려오던 브르간디 종족의 하나인 큐리아씨족이 1700년 후반기에 코레아로 일제히 개명한 것으로 밝히는 등 님부 이태리의 코레아氏들이 한국사람인 안토니오·코레아의 후손이 아닐것이라는 의문을 제기·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본보는 구주신문의 협조로 안토니오 코레아의 코레아氏 뿌리가 한국인이라는데 의문점을 제기한 구주신문의 보도내용을 전재해 본다. <편집자 註>
안토니오 · 코레아는 1597년에 임진왜란으로 강토가 왜군에게 짓밟혀 도륙이나고 수없이 많은 민중이 굶어죽고 병들고 초칼에 맞아 죽은 아수라장이 된 이 땅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수만 명의 조선인 노예 가운데 한 소년으로 당시 일본에서 외국으로 팔려나갈 노예 시장에 내놓인 신세가 되었었다.
이 때 세계 일주 도중 일본의「나가사끼」를 들리게 된(1597년 6월) 이태리의 무역상인 안토니오 · 카를레띠와 그의 아들 프란체스코 · 카를레띠(방지거) 父子가 안토니오 · 코레아(후에 프란체스코가 붙여준 이름)를 포함한 5명의 소년을 12스큐티(당시 화페 단위)를 주고 노예로 사서 이들을 데리고 1598년 3월 나가사끼를」떠나「마카오」를 거쳐 당시 노예 매매 시장으로 번성하는 인도의 「고아」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
돈을 주고 노예로 이들을 샀지만 카를레띠 父子는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인 노예들에 대한 학대에 큰 동정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때마침 안토니오 · 카를레띠가 「고아」에서 병사하자 아들 프란체스코는 5명의 조선인 소년들 가운데 4명은 「고아」에 놓아주고 똘똘한 한 명만 데리고 「고아」를 떠나 여행을 계속했다.
1601년「고아」를 출발한 이들은 남대서양을 돌다가 당시 스페인과 화란간의 전쟁에 휘말려 해상에서 화란군함에 나포되어 억류 생활을 겪고 다시 풀려나 본국 이태리로 돌아와 고향 「피렌체」에 도착한 것이 1606년 7월. 1594년에 이태리를 떠난지 12년만의 세계일주 항해 끝이었다.
카를레띠의「서인도양과 동양 견문록」을 보면 이 기구한 운명의 한국 소년은 프란체스코로부터 안토니오·코레아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피렌체」에서 「로마」로 옮겨 가톨릭의 교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그 다음부터의 코레아의 행적에 대해선 일체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아 안토니오 · 코레아의 1610년 이후부터의 족적은 미궁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회사 연구 계통이나 일반 사학계에서도 유럽에 제일 먼저 발을 들여 놓게 된 최초의 한국인인 안토니오·코레아의 그 이후의 행방 추적 연구는 거의 없었던 상태에서 지난 1980년도에 한국일보 駐佛 특파원인 金聖佑 씨가 남부 이태리의 「알비」라는 마을에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코레아 씨들이 안토니오·코레아의 이태리人 후손들이라고 밝혀 한국 천주 교회 사학계를 흥분하게 했다.
김씨의 보도에 의하면 칼라브리아 州의 알비 마을에 거주하는 약 1백90명의 코레아氏 들과 인근의 「타베르나」「카탄자로」「체르바」「세르잘레」「마기자노」「코젠차」「로마」등지에 흗어져 살고 있는 코레아 氏들이 모두 한국을 뿌리로 하는 이태리인들 이라는 것.
또 김씨가 가진 알비 마을의 파스쿠알레·코레아(38세) 씨의 가문 구전(口傳) 인용에 의하면 파스쿠알레의 조상이 안토니오·코레아였는데 아눈치아라는 여인과 결혼,「알비」에 정착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불어나 코레아 家系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파스쿠알레 씨의 주장에 의문점을 제기해 주는 것은 그가 이 지역의 코레아 氏들의 성이 創氏된 姓이 아니고 기존의 큐리아(CURIA) 姓이 개명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태리인들에게 있어서 인토니오와 프란체스카 같은 이름은 미국의 「죤」이나 한국의 「영자」「철호」만큼이나 흔한 이름이다. 실제로 알비마을의 유일한 여관 겸 식당에서 져녁을 먹으면서 그 곳에 모인 10여 명의 알비마을 사람들 가운데서도 안토니오는 세명이나 있어 파스쿠알레 씨의 조상이 안토니오 였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말하는 자기 조상 안토니오·코레아는 머리 색깔이 까만 것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실제 시실리나 칼라브리아 지방 등 남부 이태리 지방의 사람들 가운데는 머리가 동양인 만큼 까만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파스쿠알레의 家系 증언은 한국소녀 안토니오 · 코레아와 자기들 조상 안토니오 · 코레아가 동일인이었으리라는 가정에 절대적 설득력이 희박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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