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전화상담(生命의 電話)의 내용이 번개처럼 내 머리를 스치고 갔다.
『네 생각은 어떠냐?』
숙이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녜요』
『그 정도라니?』
『저 동성연애 한다고 아이들이 말하는 그 정도는…』
우린 마주보았다. 거리낌도 없고 더욱 거짓 같은 건 우리사이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숙이와 옥이는 누가 보아도 친한 사이다.
그런데 둘이 얼마전부터 서로 말도 안하는 사이로 변해서 나는 우연히 교정에서 만난 숙이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여학생간에 흔히 있는 친한 사이의 냉각기(?)라고 할 수가 있겠다.
단짝일수록 자주 다투고 또 거짓말 같이 순간적으로 복구하는 이 변덕(?)은 오히려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다 가끔은 심각했다.
『우리는요 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만나서 같이 지내요』
어제 전화 속의 아이와 지금 숙이의 「교우관계」는 얼마나 다른 걸까?
졸업반인데 전화 속의 소녀는 친구와의 지나친 우정 때문에 큰 갈등을 겪고 있었다.
『어쩌면 좋아요?』
밤 아홉시까지 학급 친구들은 교실에서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둘이서는 각각 교실에서 빠져나와서는 개나리 꽃이 우거진 숲에서 만난다는 거였다.
『B하고만 친한건가?』전화 속의 소녀 A는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다른 친구들 하고는 별로 사귀고 싶지도 않아요』
어제는 마침 의료상담 차 나오신 박 선생님이 정신과 전문의였기 때문에 잠시 A의 전화를 받으시도록 했다.
몇 번 우정에 관한 상담을 해온 과거 경험 사례를 들추어 보아도 이성과의 교제 못지 않게 심각한 본인들이었다.
지나고 보면 웃어 버릴 얘길 수도 있고 또 아름다웠던 소녀 시절의 추억담으로 간직될 수도 있는 그런 얘기인데. 아니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가끔은 이렇게 소화 기능이 약한 아이들이 되어 고통스러워 한다.
나는 어제 A와의 긴 전화 상담을 끝내고 박 선생님과 「동성애」에 빠지는 아이들의 원인 등 많은 얘기를 나누었던 내용을 예로 들어 가며 숙이와 대화를 가졌다.
숙이는 가끔 그 큰 눈을 더 크게 떠서는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또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내 얘기를 들었다.
『너무 지나치는 건 비록 학급의 다정한 벗과의 사이라해도 병페가 되기 때문이지』
숙이와 나는 또 다시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로 하지 않아도 절감하면서 헤어졌다.
여학생들이 동성애(?)에 빠지는데는 누구나 친한 친구를 가지려는 본능이 있지만 특히 강한 두학생이 만날때 일어나며 몇 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걸 알 수 있다.
첫째로 순결 교육에서 강한 자극을 받아서 남자를 경원하는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두꺼운 장막이 생겼을 때.
둘째로 아버지나 오빠를 보았을 때 남자에 대한 동경심이 무너질 만큼 이상형이 못될 때. 특히 주정이 심한 아버지가 취할 때마다 어머니를 구타 한다던 가 할 때 .
셋째로 가정에서 자나치게 엄격한 통제만을 강요할 때.
그 외에도 남자들을 협오할 경험이거나 또는 남자와의 교제가 금지된 교복을 입는 여학생들에게서 싹이 틀 수가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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