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독 한국과 인연이 많은 교황이었다. 가톨릭신문은 그가 남기고 간 발자취 가운데 한국과 쌓은 다양한 인연을 소개한다.
그는 아시아에서 희망의 등불이 돼가는 한국교회를 사랑했으며, 순교자의 피가 씨앗이 된 우리 신앙의 열매를 더욱 영글게 했다.
1980년 5월 18일,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을 벌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계속되는 민주화운동으로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였다.
그의 사형선고는 5·18 민주화운동을 배후조종해 사회불안을 조장했으며,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어쩐 일인지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미국 망명 등을 거쳐 사면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했던 김대중은 이후 당대표와 대통령을 역임하며 정치적 행보를 계속해나갔고,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김대중의 사연은 그렇게 단편화되는 듯했다.
하지만 2005년, 광주일보가 국가기록원 대통령 기록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를 통해, 요한 바오로 2세가 1980년 12월 11일,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김 전 대통령의 감형을 요청하는 서신을 제5공화국 정부에 보낸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참으로 ‘평화의 교황’이었다.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전임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교황’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이 발발했을 때도 그는 평화를 역설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유고슬라비아와 루안다의 절망적 상황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세계 평화를 위한 그의 가시적 움직임이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씨에 대해 순수하게 인도적 이유로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서신이 오갔고, 김 전 대통령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또다시 2차 서신(1981년 2월 14일)을 보내 “각하께서 신속히 배려해 주신데 대한 감사를 드린다”며 “훌륭한 한국 국민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의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 것은 그가 한국을 방문한 1984년 이전의 일이었다. 그는 한국을 오기 전부터 순교자의 땅인 이 땅에 관심을 가졌고, 김 전 대통령의 선처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000년, 김 전 대통령은 바티칸을 방문해 직접 교황을 알현하고 북한 방문을 권유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긍정적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의 평화를 진심으로 빌어주었던 교황, 대통령에게 보낸 그의 서신은 한국과의 인연 가운데 첫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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