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부터 지진과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 센다이교구를 한 번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이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한·일 주교 교류모임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님과 상의해 부활 대축일 후에 함께 센다이를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는 4월 27일 아침 일찍 신칸센으로 출발해 오전 11시경 센다이역에 도착했다. 센다이교구장인 히라가 주교님이 나와 주셨다. 센다이역 건물은 부분 훼손되어 수리공사가 진행되고 있기는 했지만, 시내는 지진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히라가 주교님 안내로 먼저 주교좌성당에 들렀다. 주교좌성당도 3월 11일 지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며칠 후 일어난 여진으로 제대 뒷면 벽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센다이교구청에는 지진과 쓰나미 피해자들을 위한 자원봉사자 센터가 마련되어 여러 지역에서 온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었고 센터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격려와 위로의 글로 메워진 걸개가 걸려 있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 피해 지역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이 이어져 동북지역에는 현재 13만 명이 봉사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히라가 주교님이 손수 운전하는 차로 교구청을 출발해 시내에서 약 10㎞ 이상 떨어져 있는 센다이공항 쪽으로 이동했다. 공항으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좌측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우측은 고속도로가 제방 구실을 해준 덕분에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했던 것 같다. 공항 주변은 모든 시설이 다 파도에 휩쓸려 가버려 허허벌판이었고 공항에 주차돼 있던 자동차들이 쓰레기처럼 뒤죽박죽이 되어 군데군데 더미를 이루며 쌓여 있었다. 쓰나미가 휩쓴 지 이미 한 달이 지나 물이 전부 빠지고, 몰려왔던 흙더미가 말라 먼지를 날리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자위대원들이 여기저기서 교통정리를 하며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차가 달릴 때 많은 먼지가 일었고, 이 먼지에 여러 가지 안 좋은 물질이 섞여 있어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간 다음 히라가 주교님은 센다이항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센다이항은 평소 많은 화물선이나 여객선이 입출항하는 곳인데 쓰나미에 밀린 수천 톤 되는 커다란 배들이 뭍에 올라와 있었다. 일본 자동차들이 외국으로 수출되는 기지라고 하는데 지금은 거대한 폐차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이때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느껴졌다. 어항에서 처리하던 생선들이 썩어서 나는 냄새 같았으나 혹시 희생자들의 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항구를 빠져나온 우리는 ‘센다이’시에서 북쪽 해안가에 있는 ‘시치리가하마’라는 다른 마을로 향했다. 포구가 일곱 개 이어지는 곳인데 해변 곳곳에 쓰나미를 대비한 꽤 높은 콘크리트 보가 설치되어 있기는 했으나 거대한 파도는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 넘어 마을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그 마을에는 히라가 주교님이 잘 아는 교우 치과의사가 있었는데 쓰나미에 희생됐고 치과병원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시치리가하마’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 ‘시오가마’라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시오가마는 인구 5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해안 도시로 이곳도 피해가 심각했다. 교우 200여 명 정도의 본당에 당도하니 성당과 부속 건물이 자원봉사자 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본당 주임신부는 캐나다 퀘벡 선교회 출신 선교사로 ‘라 샤펠’ 신부님이었는데 쓰나미 당일 센다이 시내로 볼일 보러 나갔다가 본당이 걱정되어 급히 귀가하던 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소임지를 끝까지 지키려는 선교사의 숭고한 최후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오가마성당은 자원봉사자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데 한쪽으로 침구가 가득 쌓여 있었고 또 다른 쪽으로는 곳곳에서 보내온 비상용 식량과 식재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피해 지역이 워낙 광활하고 피해 상황이 너무 심각해 대단한 일은 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진흙더미를 치우고 가족들에게 소중한 물건이나 아직 쓸모 있는 가재도구를 챙겨주는 정도의 일밖에 못한다고 했다.
‘시오가마’를 떠난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이시노마키’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히라가 주교님은 이시노마키 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히요리’ 공원으로 안내했다. 공원은 지대가 높아서 벚꽃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벚꽃의 화사한 아름다움과 너무나 대조적인 참담한 광경이 눈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시가지가 제일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여러 사람이 와서 병에 국화를 여러 송이 꽂아 놓았다. 공원에서 내려다 본 이시노마끼 시내는 한마디로 쑥대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륙에서 바다쪽으로 꽤 폭이 넓은 강이 흐르는데, 쓰나미가 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 단숨에 내륙 깊은 곳까지 초토화시킨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공원에서 내려와 시내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철저히 파괴된 모습이었다. 작은 어선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건물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시내를 살핀 다음 마을 제일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이시노마키본당을 찾았다. 유치원이 딸린 신자 130명 정도의 작은 본당인데 역시 자원봉사자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본당 주임인 도이 신부님도 친척과 친지 여럿을 잃었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난 3월 11일 히라가 주교님은 도쿄에 볼일이 있어 신칸센을 타고 가던 중이었다고 했다. 오후 3시 가까웠을 때 신칸센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며 급정거를 했는데 터널 속이었다. 전동차는 멈추어 섰고 정전이 돼 캄캄한 굴속에 갇혀버렸다. 무려 18시간을 칠흑 같은 암흑 속 전철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히라가 주교님은 도쿄행을 포기하고 돌아와 버스와 택시를 여러 차례 갈아타며 겨우 센다이교구청으로 돌아왔다. 교구청에서는 주교님과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자 한때 주교님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여관에 묵은 대부분의 숙박객들이 이른 시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일터로 출발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자원봉사 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은 지난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재민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찾아온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면서 자원봉사 문화가 크게 진작되었다고 한다. 이번 동북지역의 지진과 쓰나미 재해로 말미암아 한 단계 더 성숙된 자원봉사자들의 동참과 협력이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천재지변의 외적인 재앙 자체만 보면 왜 하느님이 이런 비참한 재앙을 허락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부조리를 느낀다. 그러나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런 재앙을 통하여 예상치 못한 아주 큰 은총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이시노마키를 출발해 우리가 향한 곳은 ‘미나미 산리쿠’(南山陸)라는 해안도시였다. 여기서도 끔찍한 광경이 계속되었다. 해안가에는 모든 집들이 기초만 남기고 사라져 있었고, 고기잡이배들이 논 한가운데 올라와 있었다. 이렇게 철저히 파괴된 해안선 마을들이 무려 500㎞에 걸쳐 펼쳐져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철저히 부서지고 뒤엉킨 쓰레기의 마을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나미 산리쿠’를 떠나 더 북상한 우리는 ‘게센누마’(氣仙沼)라는 마을로 향하였다. ‘게센누마’로 향하는 도중 기차 철로가 끊어지고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도 보였다. 한 곳에는 철교가 완전히 유실되고 교각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고 기차가 산 속으로 들어가는 터널만 외롭게 남아 있었다. 게센누마시는 쓰나미가 발생하였을 때 정유시설의 기름 탱크가 터져서 흘러나온 석유에 불이 붙어 배들이 정박한 부두 전체를 사흘 동안 불태웠던 곳이다. 이곳 게센누마의 성당도 높은 지대에 있어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왜 동북지역의 성당들이 한 군데도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았는지 신기했으나 나중에 설명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지역은 옛날에도 쓰나미가 밀려온 적이 있었고 선교사들도 희생된 적이 있었기에 이 지역 선교사들 사이에는 바닷가 마을에는 절대로 성당을 낮은 곳에 지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후쿠시마’ 역을 통과할 때 후쿠시마 시내 거리를 유심히 살폈다. 유령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을 염려해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번 동북지역의 지진과 쓰나미 피해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원전 폭발과 방사능 누출로 새로운 형태의 재해를 경험하고 이중 삼중의 충격에 빠진 것 같다.
일본은 지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원전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원전 의존율이 더 높은 우리나라에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이제 원자력 발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근본적인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고 곱씹으며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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