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어느 시골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신부님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저녁 약속이라 오후에는 부활 판공성사를 주고 기차역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 신부님이 예전부터 ‘한 번 다녀가라’하셔서 그 날짜를 잡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몇 년 전 암투병으로 고생을 하셨기에, 지금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기차에 몸을 싣고 1시간 정도를 달렸습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저 멀리서 야윈 체구에 맑은 눈을 가지신 신부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차로 30분을 달려 그 본당으로 갔습니다. 신부님과 사제관을 둘러보는데 아담했고, 사제관 뒤 텃밭을 가꾼 흔적과 여기 저기 꽃도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제관에서 봉사자 없이 생활하시는 신부님은, 주일 점심 때 본당 신자분이 골뱅이가 들어있는 국수를 가져왔다 하시며 손수 지으신 따스한 밥과 골뱅이 무침, 산나물과 김치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은 빵과 우유 한 잔, 점심은 신부님께서 바쁜 일이 생기시는 바람에 오전 식사 준비를 저더러 해주기를 청하셨습니다. 텅 비어있는 주방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꺼내 반찬과 국거리를 준비해 놓은 후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신부님은 연방 ‘정말 맛있다’ 하시면서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 저 국 어떻게 만들었어?’하며 정성껏 물어보셨습니다.
그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정말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더 행복했던 식사를 한 것 같았습니다. 제대로 갖춘 것 없는 식사가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신부님의 겸손한 모습, 온유한 삶이 주방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식사 후 마을을 산책하며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사목 경험도 풍부하고 신학 박사학위도 있는 분이시지만, 나와 대화할 때는 겸손하게 어떤 문제에 대해 묻거나, 생각을 공감해주면서 대화를 하셨습니다. 산책 후 씻고 자려는데, 하루 종일 뭔가 우직한 나무 아래 영혼의 재충전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떠나는 나를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시며 좀 더 있다 가라고 아쉬워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그분이 메일로 내가 낮에 만들어 놓고 간 ‘국과 반찬’으로 저녁을 먹을 거라며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타인에게 억지로 감동을 주려하는지, 아니면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 느낌을 주고 있는지. 그 어른 신부님, 참 닮고 싶은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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