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9월 순교자성월, 가톨릭신문에 눈에 띄는 박스기사가 실렸다. 가톨릭신문 1986년 9월 14일자 6면에는 ‘남양성지 개발에 동참을…’이라는 제목으로 도움을 호소하는 기사가 게재됐다.
‘수원교구 남양성지 개발에 형제적 도움이 요청되고 있다’는 리드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지난 83년 남양본당이 당시 2000평의 부지를 매입하며 개발을 계속해왔으나, 본당 신자들의 힘만으로는 전체 성지개발에 큰 어려움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현재 로마식 야외극장의 모습을 갖추고 잔디 이식, 배수로공사, 화장실, 200명 수용의 야외텐트 등 부대시설 및 공사를 완료한 남양성지는 아직도 성지의 상당 부분이 타인 소유로 돼있고, 성지주변 야산이 모두 개인소유이기 때문에 부지 매입을 하지 않으면 성지 개발이 무척 어려워지게 된다.”
남양본당은 남양성지가 평범한 신자들의 순교지이므로 평신도들이 성지개발사업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호소의 내용은 대형십자가 및 대형묵주 설치 등 기도의 성지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당시 본당주임이었던 최덕기 신부는 “본당 일부 신자들이 그동안 농협에서 빚까지 내어 성지개발에 투자했으나 신자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기금조성은 더 이상 어려운 형편”임을 밝히면서 “우선 성지 내 타인소유부지와 야산 부분을 매입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성지를 조성하기 위한 간절한 바람은 신자들의 십시일반과 다양한 도움으로 이어졌다. 겨우 조성된 성지가 1988년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어 신학생들과 회원들이 복구 작업에 나선 아프고도 아름다운 역사도 있다.
김필립보, 박마리아, 정필립보, 김홍서 등 4명이 순교한 곳으로 알려진 남양성지는1991년 10월 7일 제2대 교구장 김남수 주교가 성지를 성모께 봉헌하며 ‘남양성모성지’가 됐다.
이로써 남양성모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안 첫 성모성지가 됐으며, 이곳을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신심과 함께 순교자들이 사랑하고 의탁했던 성모에 대한 신심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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