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즉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행위는 일상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과 유리될 수 없다. 넓은 의미의 문화,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의 정신이 발휘되고 그를 바탕으로 우리 삶이 영위될 때 비로소 신앙은 살아있는 것이다.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우리에게 올바른 문화 발전의 원리를 가르치면서 지역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조화를 강조한다. 『교회는 여러 민족과 지방의 특성을 따라 현대 감각에 적용된 새로운 예술형태를 인정해야 하며 또 그 표현 방법이 전례적 요구에 부합하여 인간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드높여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성당에서도 받아들여야 한다』(62항)
「전례헌장」에서도 『교회는 신앙이나 공익에 관계없는 일에 엄격한 통일성을 강요하고자 하지 않으며 전례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오히려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정신적 유산은 이를 보호 육성한다』고 강조해 지역교회의 고유한 민족적 전통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의 복음화를 운위할 때 그 말은 「토착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반도에 복음이 전파된 후 토착화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토착화의 길은 멀어 보인다.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 토착화의 과제는 더더욱 험난하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의토착화는 신학과 전례 등의 토착화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자신들 모든 삶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유럽은 물론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흑인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를 조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많은 경우 그리스도교 문화가 곧 서양 문화라는 오해가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유럽 교회 미술이 그대로 유입돼 곧 한국교회 미술의 실상으로 정착됐었다. 다행히 가톨릭미술가회를 중심으로 유럽 등의 훌륭한 교회 미술을 적극 소개하면서도 전통에 바탕을 둔 한국교회미술의 장을 넓히려는 노력이 이뤄져왔다.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가장 자주 가시적으로 드러났던 분야 중 하나인 음악도 오늘날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민족 전통 음악으로서 국악이 미사 전례에 도입되기도 했고 생활성가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가락을 지닌 곡들이 미사 중에 연주되기도 했다.
개신교풍의 찬송가, 복음성가, 외국민요, 흑인영가, 영화주제가, 유행가 가락까지 성가의 노랫말을 달고 미사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성음악이 지닌 고유한 요소들이 훼손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오늘날 청소년과 청년층이 참례하는 미사에는 이러한 생활성가들이 상당 부분 자리잡아 젊은이들의 미사 참여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문학 부문에서 가사 형식을 빌어 천주교의 교리를 담아냈던 천주가사는 신앙의 토착화에 훌륭한 매개역할을 했다.
비록 그 이후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중단됐으나 천주가사가 지닌 의미는 오늘날 많은 신자 문인들이 한국적 정서와 전통의 요소를 그리스도교 정신과 조화시켜 작품을 써내는데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토착화의 과제가 단지 수십년의 과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닐 것이며 수 백년 이상 쌓이고 축적된 삶의 체험과 전통 요소들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나간다는 것은 분명하다. 선교 3세기에 들어선 한구교회는 이제 토착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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