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퍼덕, 스물 둘이요』
『철퍼덕, 스물 셋이요』
한 노인이 고통에 절규하다 결국 혼절한다. 그러자 포졸들은 가차없이 물을 뿌리고 다시 곤장을 내리친다. 우람한 체격의 포졸이 매섭게 매를 돌리자 그의 몸에서는 살점이 뜯겨나가고 핏물이 온 사방으로 튀긴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에 심문하던 판관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소리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던 그 노인은 갑자기 『예수님, 마리아님 저를 구원하소서』『이 불쌍한 영혼을 어여삐 여기소서. 힘을 주소서』라고 외치며 간절히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 아닌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매질하던 포졸도 판관도 할머니의 정신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 가혹한 매질을 당하고도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1839년 9월 어느날 포청옥에서 71세로 옥사한 성녀 김루시아의 형벌 장면이다. 교회사에 따르면 김루시아는 온갖 교활한 심문을 받았지만 한결같이 배교를 거부하다 9월 옥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76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함 그 자체였다.
「곱추 루시아」. 교우들 사이에서 불려진 호칭이다. 그는 곱추였던 것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윈 김루시아는 우여곡절 끝에 혼인을 했지만, 남편으로부터 온갖 구박과 멸시를 다 받다 결국 집을 나오게 딘다. 곱추란 이유 때문에 당한 수모였다. 더욱이 그는 지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 모든걸 자신의 운명으로 돌리고 잘 참아오던 김루시아는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 때문에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한 그는 남편과 가족들이 모두 외교인이라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루시아가 집을 나오기 전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때 그는 평소 자신의 신앙적 마음가짐을 밝히고 있다. 당시 남편은 그렇지 않아도 쫓아낼 구실만 찾던 중 천주교인이란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하느님이 좋으냐, 남편이 좋으냐?』남편은 비꼬는 말투로 김루시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어찌 당신과 하느님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효로서 진심으로 공경할줄 안다면 남편 또한 극진히 섬길 수 있을 겁니다』
김루시아는 집을 나온후 교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럼에도 그는 궂은 일과 병약자들을 돌보는 일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에게 남을 돕는 일만큼 크나큰 기쁨이 없었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자신 또한 온전치 못한 몸으로 항상 기쁘고 겸손하게 봉사하려는 김루시아의 적극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그는 교우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었다. 교인들에게 긴밀한 연락망은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삼엄한 관가의 감시망을 뚫기란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루시아가 그 중요한 연락책 역할을 담당했다. 곱추에다 초라한 노인이었던 그의 존재는 포졸들의 관심밖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전국을 다니며 교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김루시아는 관가에 체포되고 만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기뻐했다. 이미 신앙인으로 순교할 결심을 굳건히 가지고 있던 김루시아는 『나도 신자이니 국법대로 죽게 해주십시오』라며 오히려 판관에게 간곡히 청했다.
지금부터 김루시아의 진솔한 신앙고백이 시작된다. 참신앙은 신학적, 철학적 지식이 아닌 바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그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루시아는 그의 용맹한 삶을 통해 진심으로 주님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판관의 심문 장면이다.
판관은 『네가 아무리 무식해도 국법이 얼마나 준엄한지 모른단 말이냐?』라며 호통쳤다. 이어 『글도 읽지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하느님을 존재를 알 수 있느냐? 네가 하느님을 진정 보기라도 했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루시아는 『나리, 제가 보지 않은 것으로 따진다면 이 나라 임금님도 뵙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임금님께서 보내신 나리를 보면서 임금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지 않고 믿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천주교에서 배웠습니다』
다시 판관은 『너희 천주교에서는 천국가는 길이 굉장히 좁다고 하는데 사실이냐?』라고 묻자 김루시아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판관은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그렇게 천국가는 길이 좁은데 너마저 들어가게되면 얼마나 더 비좁겠느냐? 그냥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넓고 편안한 길을 택하거라』라며 그에게 배교할 것을 권했다.
이 때 김루시아는 기막힌 답변으로 판관을 당황시키고 만다. 『나리, 나리는 지금까지 만권 정도의 책을 읽으셨겠죠? 그렇다고 나리의 머리가 비좁게 느껴지십니까? 천국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은혜롭고 풍요로운 곳이 천국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게도 주님의 자녀로 순교해 천국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소원대로 영광스럽게 옥에서 순교했다. 이후 성녀 김루시아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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