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103위가 시성된 것은 한국교회에 내린 각별한 은총이다. 한국교회가 창설된 후 가장 큰 경사이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햇으며 무려 103명의 순교자가 한꺼번에 시성되는 엄청난 은총의 순간을 맞아 한국교회 신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그후 한국교회의 순교신심은 어떠한가. 과연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 새활에서 순교 신심은 얼마나 자리를 잡고 있는가. 물론 한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인이 탄생한 것은 이제 겨우 16년이 됐다.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예를 볼 때에도 순교 신심이 영성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현재 시점에서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순교자 현양운동이 오랫동안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할지라도 한국교회의 순교신심과 현양은 민족적인 정서와 전통문화 속에 바탕을 둔 종교 심성, 기층적 종교의식, 그리고 토착화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에 조급하게 행사를 통해 형성될 것은 아니다.
한 때 붐을 이뤘던 한국성인 이름을 세례명으로 갖는 운동이나 본당주보를 한국성인으로 모시는 일 등은 모두 한국교회의 순교 신심을 앙양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순교신심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시들해지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견되는 이유는 시복시성 추진 과정에서도 이미 안고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즉 시복시성 추진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신심운동이며 순교자들에 대한 싶은 신심을 키워나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시복시성 추진의 행정적 절차에 이같은 신심 운동이 병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예를 볼 때 이미 지역교회에서 오랫동안 그 지역의 거룩한 인물로 공경받아오던 성인이 교회의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성인으로 선포되는 것이 상례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경우 엄청난 박해를 받은 선교지역의 순교자들이라는 특성이 인정됐고 미처 지역교회의 신자 대중들이 자기 지역의 성인들을 충분히 현야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내년 신유박해 200주년을 맞아 제2의 시복시성운동을 펼치고 있다. 각 교구에서 벌이고 있는 시복시성추진은 또 주교회의 차원에서 뜻을 모아 함께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103위 성인 중에서 일반 신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 성인은 극히 일부이다. 제2의 시복시성운동도 중요하지만 이미 시성된 103위 성인들에 대해서도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앞으로 진행되는 시복시성추진운동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몇 명의 성인을 더 모셔야겠다는 의식보다는 그분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순교자에 대한 관심가 열정이 더욱 깊어지고 순교신심이 한국교회의 영성으로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교구별로 좀더 풍성한 순교자 현양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실시돼야 하며 순교자 전기집 등 일반 신자드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인전의 집필, 특색있는 성지 개발, 성지 순례의 활성화, 신심운동 지도자 양성 등 다양한 과제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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