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침묵의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 1백50명의 성직ㆍ수도자를 잃게 한 6ㆍ25가 순교로 점철된 한국교회 수난사의 한장으로서 기록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춘천 주교좌 성당인 죽림동성당 구내에는 6ㆍ25때 피살 된 사제 5명과「죽음의 행진」을 한 주교 1명 등 6명의 6ㆍ25사상자 묘가 조성 되어 있음이 확인 되어 서른 두해 전의 아픔과 아직도 수난 중에 있는 침묵의 교회 형제에 대한 기도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6ㆍ25동란 때 성직자를 향한 첫 번째의 총부리는 남침 이틀 후인 6월 27일 춘천교구 고양로본당 주임 고 안또니오 신부를 향해 불을 뿜었다. 이미 38선으로 교구가 갈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춘천교구는 6ㆍ25로 6명의 사제를 잃고 교구장과 1명의 사제가 죽음의 행진을 하는 수난을 당했다.
그런데 춘천교구는 6ㆍ25때 피난 되거나 피살된 8명의 성직자 가운데 죽음의 행진 도중 옥사한 손 신부와 생환되어 생존하고 있는 조 신부를 제외한 사상자 전원을 한곳에 모셔 6ㆍ25 희생자 묘역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현재 죽림동성당 제대 뒤편 뜰에 마련된 묘역에는 9ㆍ28수복 직후 안치한 애란인 진 야고버ㆍ고 안또니오ㆍ라 빠트리치오 신부의 묘가 나란히 있고「죽음의 행진」에서 돌아와 70년 12월 삼척 성내리에서 선종한 춘천교구장 구 토마 주교와 한국인 사제 백옹만ㆍ이광재 신부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지난해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전후하여 조성된 한국인 사제들의 묘는 시신이 각각 평양과 원산에 매장되어 있는 가운데 새롭게 마련 되어 공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끝까지 교회와 양 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제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지난해 백ㆍ이 신부의 묘를 조성하면서 구 토마 주교와 꼴룸바노회 소속 사제 3명의 묘를 새롭게 단장한 죽림동본당 주임이 웅현 신부는 그 당시 교회에 대한 공산군의 만행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6ㆍ25 때 희생된 성직자의 묘앞에서 지금도 믿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북한 교회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자세가 무척 아쉽다고 강조했다.
한편 6ㆍ25 발발 후 첫 희생자인 고 안도니오 신부(당시 41세)등 3명의 골룸바노회 소속 애란인 신부들을 모두 갑자기 쳐들어온 괴뢰군의 충탄에 자신들의 본당 관할 구역에서 쓰러져갔다. 특히 복사인 김경호(가브리엘)씨와 함께 피납 된 고 신부는 납치자들을 집단 학살하려는 괴뢰군의 총탄 세례를 받는 순간 젊고 가족이 있는 김경호 씨를 살려야겠다는 판단 아래 순간적으로 김경호씨를 밀치고 자신이 총탄 세례를 받음으로써 양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목자의 면모를 보여 줬다.
그리고 묵호본당 주임이던 라 빠트리치오 신부는 당시 회장이던 나 프란치스꼬씨의 집에서 남 회장과 함께 납치 되어 묵호 부근 방재굴이라는 산중에서 괴뢰군의 총탄에 쓰러졌다.
또한 삼척본당 주임이던 진 야고보 신부는『나는 최후까지 성당을 지킬 것이며 하느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가톨릭 신앙으로써 하느님을 증거할 것을 각오한 바 있다』며 끝까지 성당을 지키다 피납되어 무참하게 총살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죽림동 성당 묘역에 묘가 마련 된 이재광 (디모테오) 백은만 (다마소) 신부는 원산과 평양에서 각각 피살되고 옥사하는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양양본당주임으로 38선이 그어지고 난 다음 박해를 피해 남하하는 덕원 신학교 학생들을 피신 시키려 성당을 지키던 이 신부는 6ㆍ25 발발 직전 대대적인 성직자 피살과 납치 때 피납 되어 원산으로 끌려 갔다.
개신교 목사와 함께 수갑에 채인채 50년 10월 9일 원산 부근 방공호에서 집단 총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이 신부는 총탄에 신음하는 피납자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펴려다 괴뢰군의 확인 사살에 의해 최후를 맞이 했음이 후일 밝혀져 사제 다운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서품 후 첫 부임지인 평강ㆍ이천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펴던 백응만 신부는 49년 4월 납치되어 50년 1월 옥사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그 동안의 고초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편 6ㆍ25 순교자들과 함께 나란히 묻힌 춘천교구장 구 주교는 50년 8월 피납 되어 9백48일2백55마일의 「죽음의 행진」을 겪고 다시 내한하여 이땅에 영원히 묻힌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