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되재(高山升峙)라 했던 전북 완주군 화산면 되재리(完州郡華山面升峙里) 본당은 호남지방에서 가장 오랜 본당은 신교 자유의 여명기(黎明期)때 설정된 지방 전교의 중심지로서 전주(全州) 대성동(大成洞)과 금구(金溝=金堤) 배재(梨峴)와 함께 호남교회 발상의 3대 원류(源流) 중 하나인 곳이다
「교회의 은둔(隱遁) 시대」를 말해주는 표상이기도 한 되재(升峙) 성당은 서울 약현(藥峴=中林洞) 성당 다음으로 시골에서는 맨 처음 세워진 성당이며 되재본당(本堂) 은 1893년「차돌박」에 거처하면서 전교하던 비르모(P. Villemㆍot 禹一模) 신부가 본당을 이 곳「되재」로 옮기고 성당과 신부 사택 건축공사를 시작했으나 1894(甲午)년 전라도에서 일어난 동학란(東學亂)으로 몇 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던 어려움을 거쳐 1895년 준공되고 뮈뗄(閔)주교의 집전으로 헌당 (獻堂=강복)된 건물로서 성당 수호성인은 성베드로ㆍ바오로 사도로 정하였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이래 1세기를 6 ~ 7차나 순교자들의 선혈 (鮮血)로 이 강토를 물들게 했던 교난이 거듭되어 신자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읍내나 평야 지대에 살지 못하고 피난겸 산협(山峽) 지대로 은거 하였기 때문에「되재」와 같은 두메 산골 벽촌이 전라도의 초대(初代) 전교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1898년 비르모(禹) 신부는 서울로 전임되온 알론(A.Mialon 孟錫浩) 신부가 제2대 본당신부로 부임했다가 1905년 정읍(井邑)으로 전임되고 베르몽(J.Bermond睦世榮) 신부가 제3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1906년에는「신성(晨星)학교」를 설립, 개교하여 교육사업도 시작하였다.
1914년 베르몽(睦) 신부는 경남 마산(馬山)으로 전임되어 루까스(L .Lucas 柳嘉鴻) 신부가 6년간 사목했으며 제5대 주임으로 까달스(J.Cadars 姜達淳) 신부가 부임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고국에 소집되어 출전하게 되어 3년간 본당은 신부 공석(空席)이었으며 1921년 빠르트네(ㆍRdp3rthene 朴德老) 신부가 제6대 본당 신부로 10년간 이지방 전교를 담당하였다.
1930년부터 한국인 성직자를 모시게 되어 이성만 (李性萬 이냐시오) 박문규 (朴文圭 미카엘) 임인교 (任仁敎 바오로) 서병익 (徐丙翼 바오로) 신부 등 네분이 차례로 역사와 전통의 뿌리깊은「되재본당」주임을 역임하였던 것이다.
1984년까지 전주교구의 큰 본당 중에 꼽히었던 긍지를 갖고 있던「되재」는 신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대가 변한 8ㆍ15해방 후 사람들이 도시(都市)로만 몰려드는 추세에 교회의 포교 방향도 전환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본당을 고산읍(完州郡 高山邑內里)으로 옮기게 됨으로써 50여 년 간 순교자 후손들의 삶과 믿음의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겨레의 계몽과 개확의 기수 역할도 하였던「되재본당」은 폐쇄되고 산골공소로 격하되어 역사적 유서깊은 성당건물마저 1950년의 6ㆍ25전란으로 소실되어 이제는 그 자취도 찾을 길 없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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