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存 위한 욕구도 충족치 못한 「경자」에게 단계 건너뛰는 욕구 토의하려 했으니…
상상을 초월한 풍경 일 뿐이었다 하수구와 상수도시설이 안 된 소위 상동네라는 곳을 처음 가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정도가 심했다.
아직 봄이 머무는 금수강산의 산동네엔 풀꽃 한송이 없는 메마른 등성이에 닥지 닥지 붙어 있는 판자 칸막이들이 집이 었다.
작은 공간은 비닐 끈을 매어서 빨래를 널어 놓아 통행이 더욱 불편 했다.
꼬불 꼬불 길 아닌 길을 더듬어서 경자네 집에 들어 갔다. 네 개의 방주인이 제 각각이라는 이 집도 냄새 라든가 파리가 하수도에 몰려 있는 게 예외는 아니었다.
삼일간 결석한 경자는 집에 없었다. 여섯 식구가 한방에 산다고 경자 할머니가 말했다.
학기 초부터 등록금을 내려는 친구에게 다음 날 주겠다며 급히 돌려 쓰고는 몇 달을 보내고、자질구레한 꿈질 때문에 경자는 친구들을 이리저리 피하게 까지 되었다.
얼굴도 두 눈도 유난히 새까맣고 말을 빨리하는 경자는 선하다든가、 침착한 것과는 대조적인 그런 학생이었다.
조퇴 때문에 교무실에 내려왔을 때 보니 실내화가 너무 더럽고、뒷굽을 찌그러서 신었기에 주의를 주었다.
경자는 머뭇거리는 면이 있다고 보았는데 재빨리 행동하는 것 보고 놀라기도 했었다.
경자가 이틀 째 결석 하자 반장과 몇 아이가 내게 왔다.
「선생님、지난 금요일에 어떤 아줌마가 경자를 찾아와서 외상 값을 내라고 막 야단 했어요」
세 아이들은 모두 경자와 관련된 돈 얘기를 했다.
그토록 많은 얘기의 주인공이 된 경자가 결석 하게 된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할 지.
나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있었는데도 지금에야 얘기하는 것은 반장으로서 태만이라고 타이르기만하고 경자네 집에 같이 가기로 했던 것이다.
신학년이 되고서 아이들과 면담을 한 두번 할 동안 경자는 여섯 번쯤 만났다.
친구의 등록금 빌린 것은 급한 병원비 때문에 빨리 못주었다고 했을 때도 경자의 말을 그대로 믿겠다고 성의껏 다짐 해 주었었다ㆍ
그리고는 여고생 다운 욕구로서 자아 실현에 대한 욕구를 대화로 삼았다. 자신의 능력 내지는 취미를 찾고 개발하고 이용하자는 욕구라고 했다. 이것은 자기 존중이며 사회에 적응하는 자신감이 된다고도 했다.
몇달 후면 대학이나 사회에 나갈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가치관의 확립을 돕는 자기 가치에 대한 태도의 주입이기고 했다.
그런데 경자네 방 앞 사과 궤짝에 앉은 내 마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고、배신감 같은 감정과 수치심 같은 묘한 감정에 사로 잡혀、그저 자신이 스스로 비참할 뿐이었다.
욕구란 사다리와 같은 것 이여서 하나의 욕구가 성취됨에 따라 인간은 좀 더 높은 욕구를 성취 하려 한다.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에 이르는 다양한 욕구를 분류한 이도 있었다. (머슬로우 - MASLOW)
생존을 위한 욕구도 충족 되지 못한 경자에게 몇 계단을 건너뛰는 자아 실현의 욕구나 토의하려고 했던 자신의 시행착오 앞에 기운이 빠질 뿐이었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보리죽을 먹으면서 경자는 내가 한 말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 동안의 빚(꾼돈)을 사흘간 벌어서 들고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저 퀭한 눈으로 나를 보았을뿐 내가 찾아간 것에 대한 말이 없는 경자의 등을 몇 번 쳐 주었다.
「결석할 때는 친구편에라도 내게 알려라」
경자의 욕구는 먹고 입고 잠자는데 필요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만족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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