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5월 15일 포르투갈 제일의 산업 도시인「포르토」의 프라카 도스 알리아도스에서 포루투갈 노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행한 연설 내용이다.
여러분은 노동자들입니다 이 말은 이미 사상계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읍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이미 노동의 가치를 대변 해주고 있으며 여러분의 모습에서 저는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이 순간 말씀드릴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읍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이미 노동의 가치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여러분의 모습에서 저는 제가 여러분에게 지금 이 순간 말씀 드리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읍니다. 저는 여러분의 모습에서「나자렛」의 목수로 알려진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또한 저는 축제의 기쁨으로 희망에 차있는 여러분의 모습에서 신뢰의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는 매일의 격심한 노동으로 얼룩진 십자가와 고통을 여러분의 모습에서 볼 수 있읍니다.
사랑하는 노동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분에 대해 얘기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이 우정의 상징으로 어떤 사람과 악수를 할 때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여러분이 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와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노동 하는자의 손은 고귀합니다. 그 손은 세계를 변화 시킵니다. 그 손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새로운 현실을 확립 합니다. 인류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그 손은 고결합니다.
레오 13세의 사회 문제에 관한 유명한 회칙「테룸 노바룸」반포 90주년을 맞아 본인이 최근 인간 노동에 관해 발표한 회칙에서 저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입각해서 노동의 이현실과 깊은 관련하에 놓여있는 인간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자 했읍니다. 그것은 노동의 귀중함을 밝히는 동시 인간 존재에 어려운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함 이었읍니다.
인간을 신뢰하고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쏟고있는 교회는『노동자의 존엄성과 제 권리에 대해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그와 같은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 되는 상황을 비판하며 인간과 사회에 의해서 진행한 발전이 이룩 될 수 있기 위해 위에 언급한 변화들이 추진 되도록 돕는 일』을 교회 사명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사실 하느님의 원래 계획에 따르면 인간은 탁월한 지혜와 노동으로『땅의 주인이 되어 땅을 지배하도록』(창1·28)불림을 받았읍니다. 그는 피조물의 핵심입니다.『노동 가치의 으뜸 가는 기본, 따라서 그 존엄성은 인간 자신입니다』그래서 어떤 류의 육체 노동이나 정신 노동을 평가 할 때 라도 명심 해야 할 것은 노동자의 존엄성이 기본이며 표준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노동의 주역이자 목표가 되며 그 노동의 진정한 창조자 이자 기공(技工)은 아무리 비천하고 단조로운 노동이라 하더라도 항상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입니다. 그는『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창조된 인간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계속 엄습하고 있는 점증하는 물질주의 문화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노동의 주관적인 중요성을 제 2의 위치로 좌천시키려 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관심자 즉 인간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관심사를 항상 존중 하지 않는 강력한 힘에 좌우대 인조 인간이 되거나 정체 불명의 존재가 되거나 혹은 불품 없는 비인간화 된 집단으로 전락 할 위험성이 있읍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도 잘하시다시피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기계의 발명은 확실히 인간 노동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 했읍니다. 만일 도구의 사용이 인간의 일을 늘어 나게 하고 강화 시킨 것 이라면 기계는 노동을 대신 하려 했던 것입니다.
만일 노동이 인간을 위한 것이고 인간이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노동계 문제의 점차적인 해결은 보다 의롭고 크리스찬적이며 인간적인 양심을 찬조하려는 노력을 통해 추구 돼야 할 것입니다.
이 양심을 기초로 해서만이 우리는 노동계의 여러 문제 곧 자본과 노동간의 관계에 있어 어렵고 미묘한 문제를 비롯 소유주와 노동력, 고용주와 고용 인간의 관계를 취급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어느 편의 문제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자본이 없이는 어떠한 노동도 있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자본의 소유자나 제공자는 공동선을 위해 막대한 공헌을 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이의 존경과 경의를 받을 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용과 노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노동은 단순한 자본의 역할이라고만 볼 수는 없읍니다.
인간 노동은 자본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인간이 기계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기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최근의 심원한 변화가 그 어느때보다 완전한 경제적 번영과 사회정의 의풍토록 조성하기 위한 진의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거대한 변화에 따라 사회 및 정치 질서에 있어 해결과 조정이 요구되는 필연적인 긴장이나 불확실 그리고 결점들을 숨기지 않아야 할 것 입니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 시민 각자는 자신의 성실하고 충실한 노동을 통해 보다 나은 국가 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진심으로 협력 해야 할 의무가 있읍니다. 국가공동체는 공동선의 새로운 이름인 사회 정의가 촉진 되고 인간 존엄성이 모든 시기에 존중 되는 곳입니다. 이 공동선에 비추어 요청 되는 어떤 형태들의 적시(適時)와 정의가 판단 돼야 할 것입니다. 그 형태들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관심사를 수호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전체 공동체에 크나큰 손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노동자 여러분 여러분이 각자 고립된 채로는 여러분의 문제를 최대한으로 잘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명백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 하실 수 있으며 또 서로 다른 직업에 고용된 사람들의 생명에 관련된 관심사를 수호 하기 위한 목적으로 협회나 노조를 결성할 권리도 갖고 있읍니다.
가톨릭의 사회교의는 노동 조합이 사회 계급 구조의 반영이나 계급 투쟁을 위한 대변자로써 필연적으로 사회생활을 지배 하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읍니다. 노조는 진실로 사회 정의와 노동자 각자의 직업에 일치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한 투쟁의 대변자입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제가 이미 언급한 노동에 관한 회칙에서 밝힌대로『정당한 선을 위한 정상적인 노력의 하나로 나타나야하며』현상황에서는 직업에 의해 결성된 노동자들의 요구와 공적이 부합되는 선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어디까지나 그 투쟁은 다른 이들에 대항하는 투쟁이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는것은 여러분에게 달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절대로 증오나 폭력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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