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주년을 앞둔 한국교회 곳곳에서 토착화란 용어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미사 전례를 비롯, 각종 전례 예식 등을 우리 고유 전통문화 속에 적용, 보다 밀도있게 접할 정착시키도록 시도하는 토착화 바람이 그 어느때보다 높게 일고 있는 현상은 2백년 역사속에 성장해 온 한국 교회가 새로운 차원에서 이땅에 정착하는 중요한 밀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같은 배경 속에 서울 홍제동본당(주임 · 김수창 신부)은 오는 추석 명절을 기해 각 가정에서 지내는「茶禮」에 가톨릭 전례의식을 도입한 절충식 차례예식 절차를 제시하고 차례를 지내도록 권장,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토착화를 향해 구체적 실현단계에 돌입한 토착화의 현장을 찾아 2백년 한국교회 미래상을 가늠해본다.
9월 5일을 기해 본당 모든 자들에게 발표, 권장하게 될 홍제동본당의 차례 예식 절차는 전통적으로 지내온 우리나라 적절히 혼합한 이른바 절충식 차례 예식으로 벌써부터 큰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준비단계」「미사」「차례」등 3단계로 구분, 지내도록 마련된 홍제동본당의 차례 의식을 보면 먼저 준비단계에서「집 안 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참례 지내는 방을 잘 정돈한다」「목욕 재계하고 단정한 옷으로 정정한다」「고백성사를 받고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것을 비롯 정성껏 차례상을 차리되 형식을 갖추려 하지 말고 평소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고 차례상에는 촛불과 꽃을 꽂고 향을 피우도록 하며 벽에는 십자고상을 걸고 그 밑에는 선조의 사진을 모시거나 이름을 정성스럽게 써서 붙이도록 한다는 등 차례 지내기에 앞서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께 예률 올릴 준비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어 가족이 함께 참례한 가운데 본당 공동체가 우리의 선조와 후손을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미사를 봉헌하도록 마련됐다. 본 차례 절차에서는 성호로 시작, 「성가」(공동체 성가집에서 하나를 선택해 부른다)를 부르고 성경 말씀을 봉독하는「독서」(요한 14장 1 ~ 14 · 요한 15장 1 ~ 17장1 ~ 26 · 루까 2장 41 ~ 52 · 마태오 5장 1 ~ 12 · 로마 9장 1 ~ 18 · 로마 12장 1 ~ 21 · 꼬린토전서 13장1 ~ 13 · 에페소 5장 6 ~ 20)를 하도록 구성되었다.
독서에 이어「가장의 말씀」시간으로 선조들에 대한 소개와「가훈」「가풍」을 전해주고 아울러 오늘의 집안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솔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또한 선조가 남긴 말씀과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서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유익한 대화를 나누며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과 일치를 다지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가장의 말씀」시간은 차례 中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시간이야말로 바쁜 현대사회 안에서 진지한 대화 한번 나눌 수 없는 가족들이 선조들의 행적과 말씀안에서 오늘의 자신을 찾아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 되고 있다. 말씀에 이어 조상의 영전에 남 · 여를 가리지 말고 서열순으로 큰 절을 드리고「사도신경」「부모를 위한 기도」「자녀를 위한 기도」「부부의 기도」「가정을 위한 기도」등 기도성에 의한 기도와 모든 식구가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성가와 주의 기도를 다함께 바치고 차례 음식을 나누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를 한후 성호로 끝을 맺는다.
이상과 같은 홍제동본당의 가정 차례 의식은 먼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양식을 최대로 살리려한 반면 예식과 절차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현재 생활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한 개혁을 감행, 실생활 가까이 접근시키려 한 점이 크게 돋보이고 있다.
이 점은 선조에 대한 예로써 조상을 통해 오늘의 자신을 새롭게 확인하는 엄숙하고 신성하며 아름다운 예식이 보다 쉽게 우리 생활 안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시 되고 있다.
또한 예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평범한 의식안에 가톨릭의 전례를 무리없이 삽입, 조화있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 받을 수 있다고 본당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점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차례예식에 대한 연구부를 구성, 실현 가능성을 모색해온 홍제동 본당으로서는 연구팀들의 반응과 효과만을 놓고도 이미 장담할 수 있다고 지적, 확실한 근거로 나타나고 있다.
홍제동의 차례 예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절차는 미사. 흔히 신자 가정에서 명절과 기일에 고인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며 선조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고 명복을 비는 예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전례로 실시되어 왔다.
이같은 미사가 고유 전통 의식 과정속에서 봉헌 될 때는 가족과 본당 공동체가 선조들에 대한 기도속에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깊이 드릴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를 지닐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는 차례 의식은 차례를 집전하는「가장의 말씀」으로, 이 시간이야 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로, 가정을 굳건히 지켜주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상에 대한 소개말씀, 그리고 가정의 가풍 규율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의 생명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가족 전체, 나아가 이 사회 전체와 관련이 있다는 연대성과 인생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가정 차례 예식」을 구상하고 시도한 홍제동주임 김수창 신부는 차례를 경건하게 지내는 가운데서 생명의 연대의식, 가문과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책임 의식을 깊게 할 수 있다고 강조, 따라서 가정과 사회가 질서있는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신부는 특히 오늘의 이사회가 혼돈을 거듭하는것도 가정에서부터 길러져야 하는 질서의식과 효심, 그리고 가문과 가족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리는 차례 의식의 보편화를 통해 하느님과 인간 조상과 후손 사이에 올바른 질서 의식이 싹트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김 신부는 초기 우리 교회에서도 차례를 지내는 것이 우상 숭배라고 규정되어 금지 되었었다고 지적하고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고 절하며 예를 드리듯이 돌아가신 부모께 예를 드리고 추모하는 것이 우상 숭배일 수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9월 5일 주일과 함께 홍제동 전체 신자들에게 제시 될「가정 차례 예식」은 신자 대다수가 제사를 지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속에서 어쩌면 빠르게 뿌리를 내릴 수 있을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2 백주년을 바로 목전에 두고 한 본당에서 시도되고 있는 전례의 토착화 바람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한국 문화를 통해 더욱 깊이 뿌리 내리고자 고심하는 이 시기에 실로 커다란 돌파구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 후 보편적 교회로서 한국 민족의 고유한 문화 유산을 계시의 빛으로 조명하여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각 부문에서 토착화의 가능성을 탐구, 모색하는 이 싯점에서 홍제동의「가정 차례 의식」은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서 이질적인 교회로서가 아니라 이 민족과 더불어하는 교회로서 확고히 뿌리를 내릴 수 있을것은 분명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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