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혜자가 웃었다』
그 날 일기장에 이렇게 쓰면서 나도 웃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 웃는 웃음의 물결이 밀려도 혜자는 전혀 웃지 않는걸 알았다.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러나 눈에 드러나게 이상한 점은 없었다.
생활기록부에는 혜자가 책임감이 강하고 조용한 성격이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어느날 혜자가 집안일 때문에 조퇴해달라고 했을때 뭔가 이상했다.
『어머니가 절에 가신다고?』
물었지만 시원한 대답이 없다.
이튿날 혜자가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다 말하겠읍니다』
혜자 밑에 두 여동생은 아버지의 부정으로해서 태어난 이복 동생들이었다.
그 동생들의 엄마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장시켜서 절에 그 위패를 맡겼다. 그날 혜자는 어린 두 동생을 집에서 봐야했기 때문에 조퇴 했던 것이다.
혜자 어머니가 털어놓는 긴 얘기는 전혀 현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라는게 답답하기만 했고 한 없이 못나 보였다.
『그 양반한테 아들이 팔자에 없었나 봐요』
아들을 구실로해서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을 방조한 혜자 어머니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혜자가 집에서는 명랑한가요?』 했더니 『그 앤 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아요』
제 방에만 지낸다는 것이다.
작년에 이복동생을 집에 데리고 온 후로는 엄마하고도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선생님을 뵌다고하니까 집안 얘기를 하지 말래요』
그런데 혜자는 의외로 내 앞에서 이복동생을 얘기랑 의논성있게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는 수녀가 될래요』
두 번이나 이런 뜻도 밝혔다.
천주교신자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말하는 소년들은 나름대로의 각등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엄마가 불쌍한가!』 물었더니, 엄마와 아빠가 다 싫다고 했다. 전에는 밉다고 생각했는데 미움이라기 보다는 싫은 감정이 더 정확한 고백이라고 했다. 『보기 싫은 사람, 미운것들을 피해서 가는곳이 수도원은 아니다』
영리한 혜자는 되풀이 해주지 않아도 이해가 빨랐다.
어린 동생들이 불쌍하고 귀엽다고 했다. 학교에서 돌아가는 발길을 서두르게 된 혜자는 동생들과 놀아줄 때만은 웃었다. 『혜자야, 사람만이 웃는다는 걸 너도 알지?』
인디언 영화에서 웃지 않는 인디언들의 얘기를 해 주었다.
그날 혜자는 웃었던 것이다.
눈을 크게 벌리더니 웃 입술을 말아올리며 웃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 죽으려고 했었다고 눈을 내리깔고 차갑게 말했던 혜자가 짧은 동안이지만 웃었다.
그 순간 콧날이 찡해오는데 나는 말없이 한참 앉아 있었다.
모두 웃는데 그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절대로 웃지 않는 아이는 그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은 웃음이 전염 되지 않는다.
대중을 웃길 때, 그 뜻을 알고 웃는 층과 남이 웃으니까 자연스럽게 따라서 웃는 계층이 잘 화합이 되어 웃음 바다가 된다고 한다.
혜자는 어린 나이에 부모로 해서 상처를 입는 피해자다.
그 부모들 떠나고자 몇 번을 계획 했지만 미수에 그치고 단 하루도 떠나 보지를 못했던 아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언동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혜자는 웃었다.
그날의 일기를 짧았지만 승리자의 미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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