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복음의 부자청년의 얘기는 인간존재의 비극적 한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아직 젊은 나이로 물질적인 풍족함을 누리고 또 계명도 성실히 지켜왔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생활에서 완전한 만족을 찾지 못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예수께와서 의견을 청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은 지금 현재의 생활을 인정받고자 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예수님이 지적하신 말씀이 너무나 뜻밖이었고 그 말씀, 그 부르심에 따르려는 생각보다는 그의 부르심에 따르려는 생각보다는 그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당황하게 되었고 근심하며 돌아갔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는 주님의 권유를 받아들일 생각으로 의견을 청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의 안주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는 물질적 풍요속에 안일하게 사는 생활이 주님의 뒤를 따르는데 크게 장애가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전연 달랐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때때로 강하게 와서 부딪히는 주님의 말씀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안일함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생활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있다. 자기의 생활 울타리에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는, 그래서 한치의 손해나 변화를 바라지 않는 생활 태도는 주님의 말씀을 뒤로두고 돌아서는 부자 청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우리의 안일함이 결국 아무런 생활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봉사는 하되 자기가 좋아하는 때, 마음이 내킬때, 또는 나에게 손해가 오지 않는 한에서의 봉사에 불과하고, 내 생활을 흔들고 내 생활에의 침해가 올 때는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이기적 봉사에 불과한 때가 많다.
내 할일, 내 좋은일 다하고 생활 방편이나 여유 삼아 봉사나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치스런 삶이있다. 『가진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내가 나를 따라 오너라』하신 예수님의 요구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내가하고 싶은것 다하고 나서 그리고 또 나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둔 채로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나 가르쳐 달라는 말이다.
보통 안락한 생활은 물질적 풍요, 육체적 건강 정신적 만족감 등에서 오며 이런 것들을 대개 하느님의 축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속에 안주하려 든다. 그 모든것이 참으로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잘 이용할 때라는 것은 별로 생각지 않는다. 실제 많은 경우 그러한 것들은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될 때가 많고 또 자기 안일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경제적 성장과 종교적 열성이 반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마음의 안일과 부유함이 물질적 부유와 너무나 밀착 되어 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외적풍요함에서 떠나는 것이 주께 나아가는 첨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건강을 잃었을 때, 역경과 시련속에서 흔히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고 진리를 깨닫는 경우가 그러하다.
하느님의 지혜는 지상의 삶을 요령있게 꾸려 나가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물질적, 지적, 윤리적 안일함을 떠날 때 발견케 되는 가난의 신비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안일함에 머무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도 그래서 그런 듯 싶다. 하긴 무딜대로 무디어진 우리의 마음은 쌍 칼날 같은 주의 말씀이 스며 들어와도 아무렇지도 않다. 하느님의 한마디 말씀이 「나」를 송두리째 바꿀때가 언제 일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한 변화를 깊이 체험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우리의 생활은 언제까지나 저 부자청년과 같은 비극적인 입장에서 근심하며 돌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날수 셋줄 알기를 가르쳐 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 (오늘 미사층계송, 시편 89편 12)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