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신(崇神)사범학교」는 한국 근대 교육사에서 처음으로 개교한 사립(司立)교육대학이라 할 수 있으며, 국권(國權)이 위기에 놓여 있을 당시 교육을 통한 민중의 자각 계몽으로 나라을 구해보려고 한 애국운동의 일환으로 경향각지에서 사립학교들이 설립 되던 무렵 한국천주교회가 앞서「경향신문」(京鄕新聞)의 발간과 아울러 이 나라에서 올바른 교육을 펴나 갈 교육자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한국 근대교육(近代敎育)은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접어 들면서 부터였고 근대 교육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된 것은 일본에 유학생(留學生)을 파견한 1881년부터이며 근대 교육기관의 설립은 국왕으로부터「육영공원」(育英公院) 설치를 허락 받은(1884년 9월)데서 비롯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교육이 태동(胎動)되고「육영공원」이 설립 되었지만 그것은 아직 우리나라의 근대 교육을 대변 할 만한 제도는 되지 못했고 갑오개혁(甲五改革)을 진행하면서 종전의 예조(禮曺)를 폐하고 학무아문(學務衙門)을 마련했는데 학무아문은 그 후 학부(學部)로 개편 되었다. 학부의 직제(職制)는 장차 소학교(小學校) · 중학교 · 대학교와 기예학교(技藝學校)ㆍ외국어 학교 및 사범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설치 할 계획에서 마련된 것이며 1895년 2월 고종(高宗)은「교육조서」(敎育詔書=勅語)를 내렸고 정부는 교육을 통한 국가 중흥의 이사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자 양성을 가장 시급한 일로 생각했으므로 1895년 4월 서울 교동(校洞)에「한성(漢城)사범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 학교는 본과와 속성과의 두과를 두고 수업 연한(年限)은 본과 2년 속성과 6개월이었으나 1899년 본과의 수업 연한을 4년으로 개정 하였다. 학령(學齡)은 본과 20세이상 25세이하, 속성과 22세 이상 35세 이하였고 학년은 7월 21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6월 15일로 끝났으며 12월로써 전 후 두학기를 나누어 교수하였다.
그러나「한성사범학교」는 설립 이듬해인 1896년의 경우 일본인 교사 1명과 한국인 교사 두 사람이 교수하였고 교과목은 한국역사ㆍ만국사(萬國史)ㆍ초보수학ㆍ지리ㆍ한문ㆍ한국어 작문과 한문 고정 등 이었으며 정원은 50명으로 국비로 숙식(宿食)을 담당 하엿으나 시설은 보잘것 없어 겨우24 ~ 5명 생도를 수용 할만한 교실 밖에 없었고 양성한 학생이 3년에 마치지 아니하면 새로 모집할 수가 없을 지경이요 학과정은 한문학만 힘쓰고 다른 학과는 소홀히 하였다. 이렇나 실정이었느니 시일이 갈수록 이 학교는 점차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나라가 설립한 교원 양성 기관이 이런 실태였으므로 가톨릭교회가 이나라 장래를 위해서 시급히 착수 할 사업이 교육자 양성임을 통찰한 뮈델(閔) 주교는 성오틸리엔 베네딕또 전교 수도회의 한국 진출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숭신사범학교」는 교육사업을 하기 위해 초청되어, 한국에 진출한 성 베네딕또회가 모든 시설과 준비를 갖추고 1911년 가을에 개교 하였는데 나라의 사정은 한일 합방이 되어 교육의 감독권이 총독부로 넘어가고 교육 내용이 간섭을 받게 되었을 뿐아니라 사립 사범 학교를 인가 하지 않으므로 개교한 지 2년만에 폐교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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