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 쳐 꽃다운 방년 18세랄까? 현란한 관음굴을 본 순간 나는 그만 꿈 속을 헤매는듯 넋을 잃었고 내가 그 동안 동굴에 홀딱 반해버린 결정적 동굴이 바로 관음굴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강원도 삼척군 도계읍 대이리 갈메봉 산록 표고 4백mm가량, 얼핏보기에는 속이 막혀 있는 듯하나 울퉁불퉁한 암굴의 목구멍에서 토해 내고 있는 지하수류가 몸을 오싹케 한다. 10m가량 물을 피해 들어가면「공포의 소」라는 곳에 이른다. 가슴까지 담그지 않고는 굴에 들어갈 수 없다. 수면과 천정의 간격이 보통 20 ~ 30cm로 고무보트를 타고 엎드려야만 통과할 수 있다. 얕은 곳은 가슴팍, 깊은 곳은 2 ~ 3m 넘는다.
허벅지 아랫배 겨드랑이로 차오르는 차디찬 물은 제 아무리 심장이 강한 사람이라도 간을 얼게 한다고 해서「공포의 손」라고 이름지었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랜턴을 상하 좌우로 비춰보면 입이 딱벌어지는 별천지가 전개된다. 이무기가 숨어있는 곳이 아니라 미소를 머금은 용왕의 궁전(?)에 들어온 것이다. 50여m 앞에 높이8m의 미니 폭포가 조용히 내리고 바닥은 흰 대리석의 암반으로 푸른 물이 찰랑 찰랑 흐르는 림스톤. 풀과 석순 · 석주 · 천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돌고드름. 어떤 것은 고대 신전의 조각같은 꿈의 궁전이 시작된다. 제1폭포에서부터 시작, 3개의 광장과 4개의 폭포에 이르는 1.6km의 상하 좌우는 「조화의 극치」「천고의 신비」「영롱한 경관」같은 필설로는 다하지 못하는「황홀의 도원경」바로 그 것이다.
우렁차게 내리쏟는 폭포의 물줄기를 맞으며 클라이밍을 하며 넘어설 때마다 눈에 보이는 전경은 그 위험한 순간과 피로를 금새 잊게 해주는 마력에 이끌린다.천정에 매달린 거대한 커튼을 닿을 때마다 별처럼 은색빛을 비추고 화문석을 깔아 놓은 듯 꽃접시를 엎어 놓은 듯한 절묘한 조각품이다. 제 3폭포에서 제 4폭포까지 8백여 m의 수로는 얕은곳은 종아리, 깊은곳은 7m가 훨씬 넘게 이어져있다.
게속되는 물탕으로 체온이 떨어지고 보면 헤엄치는 것도 잊어버려 애써 물속에 있는 언더 흘더를 잡고 겨우 조그마한 소를 건너고 나면 이번에는 또 헤엄을 치지 않고는 어쩔수 없는 물길이 가로 막는다.
체온을 빼앗겨 어느새 탈진 상태가 된다. 등산용어로 소위 하이 포스 미어 현상을 일으켜 모두가 사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굴 내의 온도는 언제나 섭씨 12 ~ 15인데다 수온은 10도. 시린 도가 지나쳐 발목이나 무릎뼈등 모든 관절은 감각이 마비되어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방수가 철저하다는 특수장비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제 몸조차 말을 듣지 않은 판에 굴에서는 생명이나 다름 없는 전등까지 희미해 진다. 카메라를 꺼내 놓으면 렌즈에 금방 김이 서리는데다 고성능 플래시가 아니고는 굴 속의 높은 습도가 빛을 다 빨아들여 버린다. 따라서 황홀경을 카메라에 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다시 카메라등 장비를 비닐로 겹겹이 싸고 묶고 해서 초승달처럼 커브진 소를 50m 가량 헤엄쳐 넓은 모래밭에 도착하면 여기가 이 굴의 마지막인 제 4폭포 입구.
어림잡아 길이 40m 폭 15m 높이 30여 m의 넓은 광장 북쪽에 높이 15m 위의 1 ~ 2m가량의 타원형 입에서 쏟아내리는 흰 물거품의 옥문 폭포는 그 굉음이 벼락치는것 같아 1초라도 빨리 되돌아 나가고 싶을 뿐이다. 여기까지 촬영하며 오는 시간이 대략 20시간. 졸리 웁고 피곤한 생각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땅속의 별천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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