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아빌라」의 성녀 예수의 데레사 서거 4백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아빌라」를 비롯해서 지금 전세계적으로 교회와 가르멜의 모든 가족들은 성녀의 영성을 다시금 음미하고 생활 적응을 위해 노력 하고 있다. 성녀는「완덕의 길」「영혼의 성」「창립사」「자서전」「서간집」등의 많은 저술을 지도 신부의 지시에 따라 주옥같은 저서를 교회에 남겼다. 이상의 저서들이 모두 성녀의 직접적인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데 바로 성녀의 영성 사상은 옛날 중세기의 것이 아니고 현대의 영성이기도 하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뜻으로 교회는 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성녀를 교회박사로 선언한 것으로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성녀 데레사의 삶은 온통 하느님을 향한 사랑안에서 그녀의 존재 가치가 있었다. 7세때 성녀는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어야만 하느님을 볼 수있다는 성인전을 읽은 후 오빠와 함께 죽으러 가다가 삼촌에게 붙들려 올 정도였다. 성녀는 어릴때 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에 대한사랑으로 불탔다.
성녀는 가르멜의 지표인 엘리아의 야훼께 대한 사랑의 열정(zELO jELATUSSURM)처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그녀로 하여금 하느님을 무던히도 보고 싶어 했다.
이 사랑의 열정은 성녀로 하여금 영성의 시야를 넓혔으며 이러한 영성은 구체적으로 이 피안에서 교회안에서 가르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로 이루어졌고 이 친교는 그리스도안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체험했고, 구원자의 피가 인간의 거절로 무익해지는 고통을 느꼈으며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에 크나 큰 연민의 정을 가졌다. 그래서 성녀는 교회에 대한 사랑이 온생애를 지배함을 그녀의 저서 구석 구석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성녀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의 불꽃은 그로 하여금 환상이나 지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 사랑 안에서 찾으려했고 이러한 이웃에 대한 헌신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과 한편으로는 사랑 안에 풍덩 빠지기 위한 하느님과의 대화를 위해 무던히도 고독과 침묵안에 숨으려고 노력했다. 많은 가르멜 수녀원 창설을 위한 외적인 활동이나 자매들에 대한 사랑에도 힘썼지만 성녀는 교회안에서 기도의 스승이라 불릴 정도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묵상과 관상 생활에 전심 했었다.
성녀는 끊임없는 기도와 관상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그리스도의 완전한 정배가 될 수 있음을 「완덕의 길」에서 강조하고 있다. 「완덕의 길」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완전한 기도와 관상을 위한 길잡이기도 하다. 성녀의 기도의 체험은 가르멜 식구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하느님이 백성을 위한 것이다.
묵상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한 데레사는 먼저 완전한 관상에 도달하기 위해 묵상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했다. 관상의 전제 조건으로먼저 정신적ㆍ종교적ㆍ윤리적인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인의 자세를 「완덕의 길」4 - 15장에서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묵상은 일반적으로 주부적 관상에로 이끌어 줌을 뜻하며 이 주부적 관상이란 하느님의 체험을 뜻하는 것이다.
자신의 이탈ㆍ극기ㆍ포기를 강조하는 영성적 자유는 겸손의 소산일을 강조하면서 완전한 사랑의 삶은 이 겸손안에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기도임을 선언했다.
묵상과 특히 관상에 이르기 위해 높은 덕과 성화를 강조한 성녀는 이러한 삶을 갖기 위해 온전한 헌신과 인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관상의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기에 이러함은 총을 얻기 위해 모든 영혼은 겸손안에서 덕을 닦으며 이 은총을 받기에 함당한 마음과 정신 외 자세를 갖춰야한다. 더 나아가 성녀는 관상을 위한 겸손을 말하면서 완전한 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성녀 데레사를 이해하는데는, 데레사적인 카리스마를 모르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데레사적인 카리스마는 크게 나누어 관상과 교회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성녀의 영성은 크게 두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즉『나는 하느님을 뵙고 싶다』는것과 『나는 교회의 딸이다』라는 열정으로서 이러한 사랑은 결국 하느님안에서 뿌리를 내렸고 그 분 안에서 완성된 신비 신학의 모습을 우리는 성녀의 영성에서 볼 수 있다.
그녀가 추구한 관상과 또 교회에 대한 사랑의 두 모습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고 곧 하나이다.
교회에 대한 사랑은 모든 개인적인 욕망들을 없애는 것이며 이웃과 하느님과의 친교를 위한 갈증에서 비롯되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성녀의 성소이고 가르멜 개혁의 목적이었다. 『여러분의 기도와 소원과 고행과 재소 등이 교회를 위하지 못할때 주께서 이 곳에다 여러분을 모아 주신 그 목적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가르멜 성소의 목적을 「완덕의 길」3장에서 강조한다. 가르멜 산의 정상에서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분의 영광을 위해야 하기에 가르멜 수도원엔 그리스도의 몸이 없는 십자가를 달아둔다. 그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못박아야 하고, 언제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또 영혼 들을 구하기 위해 성녀의 하느님께 대한 열정은 보다 적극적인 하느님과의 일치와 실천적인 사도직을 구현했다. 봉쇄안에서 속죄하고 봉사하기 위해 성녀는 보다 완전한 수도생활에 임했다.
성녀의 사도직은 교회안에서, 봉쇄담 안에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가를 잘 이해했고 실천했었다.
성녀의 기도를 통한 사도직은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그의 삶의 모습이었다. 이 교회를 보다 더 완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성녀는 모든것의 뿌리이고 근본이신 하느님을 그 처럼 보고자 갈망했다. 성녀의 영성적 교의나기도의 교의는 15세기의 스페인교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온 교회안에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모든 영혼들의 길 잡이기도 하다.
성녀의 영성적교의를 설명하는 관상은「영혼의 성」에서도 볼 수 있다.
관상적 교의에서 사도직의 영성적 교의를 우리는 구분할 필요가 없겠지만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한 관상이나 교회의 사랑에 대한 사도직은 서로 보충되고 조화되어야 함을 성녀의 영성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것에 앞서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영혼들의 선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관상적 과정과 사도적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녀의 영혼과 삶에서 솟아나온 영성은 결론적으로 하나는 수준 높은 관상이고 다른 것은 사도직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녀의 영성은 현대교회안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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