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따니슬라오 꼬스까는 1550년 폴란드의「꼬스또꼬프」에서 출생했다.
그는 14세때 그의 맏형 바오로와「빈」에 있는 가톨릭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얼마 후 페르디난도 황제가 서거하자 예수회가 그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되었는데 그 결과 기숙사 운영을 중단하게 돼 할수 없이 하숙생활을 하게 됐다.
기숙사 생활의 규율에서 풀려난 그의 형 바오로는 좋지 못한 행동에 마음을 기울이고 꼬스까를 못살게 대했다. 그러나 꼬스까는 개의치 아니하고 더욱 신앙 생활에 전념했다.
그후 꼬스까는 중병에 걸려 위독상태에 빠졌으나 그의 영성적인 기도를 감지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녀 바르바라가 성체를 모신 두 천사를 데리고 나타나 그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어 병은 쾌유됐다.
이에 더욱 자극받은 그는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예수회를 선택했다.「로마」의 수련 수도원에 입문한 그는 다른사람보다 뛰어나게 수덕에 열중하여 모든이의 귀감이 됐다.
수련자가 된 지 10개월째인 1568년 8월 5일 성모 설지전축일 예식에 참석키 위해 성 마리아 대성당으로 가는 도중 동반한 엠마누엘 사라는 신부의『너는 진심으로 성모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받고『성모께서는 진실로나의 어머니시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고 대답, 평소에 성모께 대한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 지를 알게 했다.
꼬스까는 자기가 성모몽소승천 축일에 죽을 것을 예언했는데 마침내 적중되어 성마리아 대성당에서 돌아온지 열흘째 되는 날 즉 8월 15일 새벽에 하느님 품안에 안겼다.
그는 1726년 12월 31일 성인의 품에 올랐으며 축일은 11월 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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