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10월 10일「바티깐」의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 된 막시밀리아노 꼴베 신부의 시성식 식장에서 행한 강론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 · 13) 오늘 교회는 이 구원의 말씀을 거의 문자 그대로 실천했던 한 사람에게 성인의 칭호를 드리고자 합니다.
1941년 7월말 강제수용소가 죄수들을 아사형에 처한 것을 결정했을 때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꼴베 신부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대신 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읍니다.
이러한 자원은 받아 들여졌고 2주간이 넘도록 기아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막시밀리아노 신부는 1941년 8월 14일 사망했읍니다.
이 것은 지난 2차세계 대전중에「아우슈비츠」강제 수용소에서 일어났고 4백여만의 사람들이 거기서 죽어갔읍니다. 생명의 창조주인 하느님이『너희들은 살인하지 말라』하신 말씀에 위배 되게 많은 결백한 사람들에 대한 대 학살이 강행된 것입니다.
꼴베 신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 남아야 했던 한 사람을 대신해 죽음으로써 그의 생존권을 지켜 주었읍니다. 프란치스젝가요와 닉젝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늘 우리들 가운데에 있읍니다.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꼴베 신부는 지난 71년「복자」의 지위에 올랐읍니다.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세상의 속죄가 이루어졌으며 꼴베 신부가 경험한 죽음을 통해서 금세기에 사랑의 빛나는 표지를 재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지금 사랑은 죄와 죽음에 의해 심각하고 다양하게 위협받고 있읍니다.
사랑으로부터 솟아난, 그 형제를 위하여 죽는 것은 꼴베 신부의 경우를 포함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찬미함으로써 인간의 영웅적인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이러한 순교의 은덕이 나오는 것입니다.
막시밀리아노꼴베 신부는 폴란등에서 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한정한 희생을 준비했읍니다.
그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으로 가득찼고 순교에 대한 열망을 안고 있었읍니다.
이러한 사랑과 열망은 그를 프란치스꼬회로 이끌었고 사도직에 몸담게 했으며 이를 준비 하기 위해 폴란드와「로마」에서 공부하기도 했읍니다. 그가 사제로 어디를 가든 이 사랑과 열망은 따라 다녔고, 폴란드에서 프란치스꼬회 회원으로 봉사할 때도, 일본에서 선교 사업을 할 때도 역시 그러하였읍니다.
그의 인생 전체의 영감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순교에 대해 열망을 갖도록 이끌었읍니다. 「순결성」에 대한 그의 존경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하느님의 은총의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세계로 떠올랐읍니다. 그의 신앙과 활동은「순결성」의 기치 아래 봉사함으로써 천부적인 감사로 협동 해 나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1941년 8월 14일「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의 기아형사에서는『하느님의 시련』이 일어났읍니다. 막시밀리아노마리아 꼴베 신부는『그 스스로가 값지다는것을 깨달았읍니다』 (지혜서3 · 5). 하느님은『도가니 속에서 금을 시험하듯이 그를 시험하시고 그를 번제물로 받아 들이신 것입니다』 (지혜서 3 · 6)
고통과 죽음이 닥쳐오면『미련한 자들의 누에는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재앙으로 생각될 것이며 우리들 곁을 떠나는 것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의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읍니다』 그들은 삶과 영광을「하느님 손안에서」경험합니다 (지혜서3 · 1~4)
이러한 삶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이 죽음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리스도가 제자에게 그들이『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않을 열매를 맺으라』 (요한15 · 16)고 하신 말씀이 실현된 것입니다.
꼴베 신부는 죽은 것이 아니라『그의 삶을 형제들 위하여 내어준 것』입니다. 그러한 죽음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두려운 것으로, 인간이 선택하고 행 할수 있는 완전히 무한한 위대함입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자신을 죽음 앞에 내어놓았읍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인간적인 죽음을 예수로 향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품위에서 예수로 향하는 증거는 그의 생애를 존엄하게 한 증거가 되며 죽음의 구원력을 증거하며 사랑의 힘을 명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것은 인간을 신성하게 하는 것과 인간에 대해 증오하고 모욕하는 모든 체제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한 것과 같읍니다.
교회는 이러한 승리의 신호를 받아들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힘을 통해 승리한 것에 흠숭과 감사를 드립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교회는 그 아들과 딸들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성성을 선언할때 모든 마땅한 정확성을 다하도록 힘쓰면서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모든 측면을 되새겨봅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는 그의 지상에서의 종의 직분내에서 하느님이 주신 성성을 부주의하게 드러내는 결정적인 의미나 말의 성찬을 허용하지 않읍니다. 그리고 막시밀리시아노꼴베서인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백복자로 시복을 한 바 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특히 폴란드와 서독의 감독단 형제들이 말한 것 처럼 막시밀리아노 · 꼴베 성인을「순교성인」으로 요청한 것을 심사숙고 했읍니다.
막스밀리안 성인의 죽음과 생애가 웅변해주는 것을 통해 하느님이 교회와 세상에 그의 죽음에 대해 보이신 신호의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유의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인간의 사랑으로 죽음에 직면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현저하게 성취한 것입니다.
꼴베 신부의 죽음이 그를 현저하게 그리스도와 닮게 만들어 모든 순교자의 모범이 되어 그의 형제를 위해 십자가위에 그의 생애를 바쳤다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죽음이 우리사대와 교회의 존재를 현저하고 통찰력있게 웅변하는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래서 나의 신학적권위의 덕을 빌어 나는 막시밀리아노 꼴베가 시복된 이래로「고백자」로 불리던것을「순교자」로서 불러주도록 천명합니다.
『주의 눈으로 보시기에 그의 충실한 종의 죽음은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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