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험난한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 온지 50년. 격동기에 태어나 나라 잃은 슬픔, 6.25 동란동 민족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꿋꿋이 사제의 길을 걸어온 서울대교구 오기선 신부가 지난 11월 17일 금경축을 맞았다. 차제에 본지는 교회사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71년 은퇴이후에도 의욕적ㆍ정열적인 자세로 생활해오고있는 젊은 노사제, 오기선 신부의 글을 연재, 50년 사제의 길을 되돌아본다. <편집자주>
어머님, 불효 이 자식이 사제의 길에 오른지 반 백년이 되는 오늘 한 없이 그리운 어머님의 묵주의 기도 소리가 이 늙은 자식의 심장을 두드립니다.
어머님, 우리 두 형제를 앉혀놓고『여봐 신부들! 내 말 명심해요. 신부가 묵주신공 그만 두는날 신부도 그만 두는 거여. 이 에미말 유언으로 들어둬요. 부디 묵주신공 잘하는 내 자식들이 되어줘요』
그 어느 아름다운 노래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어머님의 목소리가 오늘도 귀에 쟁쟁하기만 하다.
나는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왓으나 마음이 수박속같이 부드럽기만 하던 아버님이 거절치 못하고 써준 보증때문에 가세는 순식간에 기울어지고 말았다.
내가 신학교 철학과를 마쳤을 때(1927년)가세는 완전히 기울어 집안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그해 나는 신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을 일으키겠다고 결심,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짐을 꾸려놓고 집을 찾아갔었다.
조용한 여름밤, 달빛은 교교하고 풀벌레소리가 구슬픈 저녁, 모기불이 훨훨 타오르는 밀짚 방석에 어머니랑 단둘이 마주할 기회가 왔다.『어머니, 집안이 이 꼴이 되었으니 어디 사람사는 것이라 할수있겠어요. 저 신학교 그만 둘래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는『이놈아, 그러면 이제부터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내가 너를 신학교에 보낼 땐 성모어머님께 바쳤기 때문에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 성모님 자식인거여』하시면서 이만 저만 화를 내시는게 아니다.
사제의 길을 단념, 사회에 뛰어들어 가세를 일으켜 보겠다는 나의 굳은 결심은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여름방학 내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가슴을 태워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장질부사에 걸려 석달간의 방학 동안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야 했다.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신학교 생활 그만두겠다는 자식 때문에 상심하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자 어머니가 매년 제본해 둔 경향잡지가 눈에 띄었다.
몽롱한 정신속에서도「루르드의 성모력사」가 연재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장 두장 읽어가는 사이 가슴에 솟구치는 소리가 들렸다.『어머니의 말을 들어라. 어머니를 울리고 무슨일이 잘되겠느냐』하는 소리가 번개같이 가슴을 찔렀다.
병상생활 3개월동안 이「루르드의 성모력사」를 여섯번이나 탐독하는 가운데 어머니가 이러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얘야, 나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주일성경을 읽으실때「쟁기를 손에 잡고 뒤를 돌아보는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시더라』면서.
『요셉아, 네가 가야 할 길을 가야한다. 집안 일은 다잊어버려라. 이번 병에서 너를 살려주신 성모님의 고마우신은 덕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성모님을 배반하면 못써. 외길로 가거라』고 간곡히 당부하신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마음씨 고약한 사람은 없다』는 뮈세의 말도 나를 교훈한 것이다. 『어머니 이제 개학을 했으니 신학교에 가서 꽁꽁 묶어둔 집보따리를 풀께요』하면서 어머니 품에 안겨 얼만나 울었는지 모른다.
17년전(1965년 7월 15일) 85세로 대전에서 작고하신 어머니, 내 어머님, 마음놓으십시요. 한 평생 두자식(아우 오기순 신부와 나)율성인 신부 만들겠다고 밤이나 낮이나 넘기시던 묵주알이 이 두자식을 손에서 쉼없이 넘어가고 있읍니다.
어머님, 세상을 하직하시던 그 시간에도 지니셨던 그 묵주. 오늘도 이 두자식 손가락에서 넘어가고 있으니 안심하옵소서.
어머님, 이 자식이 사목 생활 50년간 80m아래로 추락하는 사고와 동해바다에서 익사할뻔하기 몇 번이었으나 이글을 쓰도록 살려주신 성모님께 머리숙여 감사드리는것은 모두다 어머님이 이 두자식을 영원히 성모님께 묵주로 꼭꼭 묶어주신 덕으로 생각하며 어머님의 고마우심에 눈물이 비오듯합니다.
어머니, 억만번 죽었다 깨어나도 사제가 되어 성모님의 역군이 되겠읍니다. 걱정 마시고 영복을 누리소서. 매일 두 손 모아 미사 드리고 이 손에 넘겨 주셨던 묵주알을 넘기면 성모님의 사랑을 노래하겠읍니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